이달의 작가 응모작 | 소설 부문 | 기억 여행자의 낙서질 note 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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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zan 이달의 작가 공모 이벤트

응모작입니다.
이달의 작가 응모작 | 시 부문 | 나 다시 태어나도 네 엄마 할거야
이달의 작가 응모작 | 소설 부문 | 기억 여행자의 낙서질 note 4-1
이달의 작가 응모작 | 소설 부문 | 기억 여행자의 낙서질 note 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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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응모작 | 소설 부문 | 기억 여행자의 낙서질 note 4-5
이달의 작가 응모작 | 소설 부문 | 기억 여행자의 낙서질 note 4-6


스판에서만 열심히 활동했더니,,, 댓글이 적은 것 같기도 하고,,, 재미가 없어서 적은 것 같기도 하고...
그래도 이달의 작가 공모 도전에 시작을 했으니 계속 써보려고 한다.


그 다음 스토리는 아이와의 이야기다. 아이와의 이야기는 내가 또또통에서 다 했기에 여기엔 쓰지 않겠다. 암튼... 그렇게 아이와 헤어진 이후... 난 대학에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우선은 학원을 알아봐야 했다. 재수학원 중에 그래도 괜찮다는 학원에 등록을 했다. 학교처럼 반이 있었고 담임도 있었으며 학교처럼 시간표도 짜여져 있었다. 내가 아르바이트를 하긴 했지만 충분한 돈을 모은 건 아니었는데,,, 학원비는 기껏해야 한 달치가 전부였다. 난 내가 일단 재수학원에 등록하면 친척들이 도와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내게 학원비를 주지 않았고, 난 한 달 만에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겨우 한 달의 재수학원 경험. 겨우 한 달이었고 추가로 학원비를 내지 못해 더 다니지 못했지만 내겐 좋은 추억과 경험으로 남아 있다. 반엔 다양한 나이의 학생이 있었는데 고3부터 40 넘은 아저씨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이 모여 한 반을 만들고 있었다. 공식적인 재수반은 3월에 시작이지만 2월에 만들어진 특별한 반이라서 그렇다고 했다. 난 학원에 다니며 내 연령대가 없다는 걸 알았고, 여기서도 주로 누나들과 친해졌다. 사회생활을 하다가 공부하러 온 누나와도 친해져서 같이 밥도 먹으며 친하게 지냈다. 아마도 내가 연락도 없이 학원에 안 나가서 서운했으리라. 아니지, 내가 말도 없이 학원에 안 갔는데 연락이 없던 걸 보니 안 궁금했을지도.

내 성적은 항상 영어가 문제였기에 난 영어를 포기해야 할지 처음부터 시작해야 할지 고민을 했다. 내 결정은 영어를 포기하고는 절대 상위권 대학에 갈 수 없다는 쪽이었다. 그래서 영어 시간에도 집중을 했는데, 영어가 너무 재밌는 것이었다. 원래 영어가 이렇게 재밌는 거였어? 학원 선생님은 정말 이해하기 쉽게 재밌게 가르쳤는데, 내가 6년 동안 영어를 헛 배운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였다. 한 달 동안이었지만 영어는 재밌었다. 흠... 이게 전부다.

내게 학원비를 줄 사람은 없었다. 할머지도, 병든 아빠도, 친척들도. 어느 누구도 내게 학원비를 줄 수 없었다. 뿐만 아니라, 대학에 붙는다고 해도 등록금을 도와줄 수 없었다. 난 울었다. 너무 분해서 울었다. 내가 바보 멍청이도 아니고, 영어가 문제였을 뿐이지, 그래도 공부는 잘했는데,,, 돈 때문에 대학을 포기해야 하다니. 난 학원비를 내지 못하게 된 날 다시 종로로 나갔다. 일을 하기 위해서였다. '그래. 1년만 벌자. 1년 동안 벌어서 내년에 다시 공부하는 거야.' 아이도 이해해줄 거야. 왜 대학에 안 갔냐고 원망하지 않을 거야. '오빠 날 위해서 대학에 가줘. 가서 날 데리러 와줘.'라고 말한 아이의 얼굴이 아른거려 눈물이 나왔다.

종로를 어슬렁 거리다가 종로에서 가장 큰 식당 앞에 섰다. '이렇게 큰 식당이면 월급도 많이 주겠지?'라는 생각에 안으로 들어갔다. 난 그곳에서 설거지를 시작했다. 170에 50kg인 난 작고 마른 체질이었기에 설거지는 너무 힘들었다. 정말 죽을 것만 같았다.

그릇은 크게 냉면기, 반찬그릇, 돌솥, 뚝배기, 접시 등으로 나눌 수 있었다. 그릇의 크기나 모양에 따라 요령이 따로 있었다. 그릇은 아무리 양이 많아도 할만 했다. 문제는 불판이었다. 불판은 정말 닦기 힘들었는데, 힘으로 빡빡 문질러야 해서 너무 힘들었다. 철심이 박힌 솔과 돌가루로 닦았는데, 정말 대단한 근육질의 남자가 아니고서는 불판 닦는 일은 노동 중에서도 중노동이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매일 아침 채소와 고기들을 3층으로 옮겨야 했는데, 이것도 완전히 사람 죽이는 중노동이었다. 출근 하고 얼마 안 있으면 차가 왔는데, 채소와 고기를 나르고 나면 사람이 완전 뻗어버릴 정도였다. 안그래도 약골인 나는 불판과 채소 나르기가 미치도록 싫고 힘들었다. 김치를 담그는 날이면 더 심했다. 채소 나르는 데만 한 시간 반은 걸릴 지경이었다. 그렇게 체력적으로 완전히 뻗어버린 어느날 주방장이 내게 이렇게 말했다. '야, 너 1층으로 내려가라. 그리고 그 머리좀 당장 자르고.' 난 그당시 빨간 단발머리였는데 주방에서 그런 꼴로 일할 수 없으니 점심때 머리나 자르고 오라고 하면서 1층 주방으로 가라고 하셨다.

"1층이요?"

"그래. 너 이제 설거지 그만하고 1층으로 출근해."

설거지를 한 지 3개월 만이었다. 보통은 설거지를 3년은 해야 주방에 갈 수 있었지만 난 운이 좋았다. 아니... 잠깐... 난 그냥 1년만 돈벌고 공부할 생각이었는데??? 아무렴 어떤가. 월급도 올려준다고 해서 난 좋아라 하고 1층 주방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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