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작가 응모작 | 소설 부문 | 기억 여행자의 낙서질 note 4-4

in zzan •  2 years ago 

중 1때 담임은 키가 작은 여자 선생님이었다. 난 집단 괴롭힘을 견디지 못해 도와달라고 담임 선생님께 요청했다. 하지만 괴롭힘은 멈추지 않았다. 나중에 꼭 물어보고 싶다. 왜 도와주지 않았는지. 어쩌면 그 놈을 불러다가 혼을 냈는지도 모른다. 만약 그랬다면 그놈은 혼나고도 날 계속 괴롭힌 개새끼거나, 혼나고도 혼나지 않은 척 한 연기대상 뺨치는 연기자거나겠지. 내가 느끼기엔 담임은 그놈을 부르지도 혼내지도 않았다. 시간은 느리게 가는 것 같아도 잘 흘러갔고, 난 2학년이 됐다. 신에게 빌고 빌었다. 그 패거리 누구와도 2학년에서 안 만나기를. 그리고 다행히도 그 패거리 중 어느 누구도 2학년에서 만나진 않았다. 3학년에서도. 정말 너무 다행이었다.

난 2학년이 돼서야 공부를 시작했다. 공부라는 걸 해본 적도 없었지만 공부를 시작했다. 내 성적표를 본 고모가 집안에 남자라고는 너 하난데 성적이 이래서 되겠냐고 하시며 문제집을 사주셨다. 학교 끝나면 특별히 할 것도 없고 해서 문제집을 풀었고, 2학년 첫 시험에서 등수가 많이 올랐다. 신기했다. '어라, 공부라는 걸 해보니 등수가 올라가네.' 하긴 48등이 더 떨어질 등수도 없지만, 그래도 등수가 올랐다. 난 등수 올리는 재미를 붙이기 시작했다. 공부를 전혀 안 하던 내가 10%쯤 노력을 했고, 그 다음 시험엔 20%쯤 노력을 했다. 그리고 그 다음엔 30%쯤 노력을 했다. 그리고 난 수학에 빠지기 시작했다. 구구단을 초 4에 맞아가며 외웠을 정도로 기억력이 빵쩜인 내가 수학에 재미를 붙였다. 그러면서 학교에선 공부 잘하는 애들과 친해지기 시작했고, 수학을 좋아하는 친구들과 수학 문제를 풀며 놀기까지 했다. 서로 문제집을 바꿔가며 풀기도 했고, 서로 문제를 내서 누가 먼저 맞추나 등의 놀이를 했다.

공부하기를 좋아하고 공부 잘하는 친구들과 친해지며 내 등수는 계속 올라갔다. 48등 35등 28등 24등 18등 14등. 이런 식으로 올라갔다. 차트로 보자면 우상향만 한 것이다. 단 한 번도 내리지 않고 계속 오르기만 했다. 암기과목은 그냥 외우기만 하면 됐다. 난 이때까지는 내가 머리가 매우 나쁜 바보 멍청인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암기과목은 의외로 쉬웠다. 무작정 외우는 건 여전히 못했지만 연관기억법이라고 해야하나? 암튼 난 이해를 하며 기억을 하는 방법을 스스로 찾아냈다. 외우는 머리는 치매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깡통이었지만, 무언가를 이해하는 능력은 뛰어났다. 머리속을 3차원 공간으로 만든 다음 내가 공부한 것들을 서로 이어주는 방법이었는데, 이걸 말로 표현하긴 좀 어렵다. 암튼 난 그렇게 암기과목은 기본 95점 이상은 받아냈고, 수학도 실력이 쑥쑥 올라가서 90점 이상을 받아내는 데에 성공했다.

문제는 영어였다. 영어단어가 도저히 외워지지 않았다. 이걸 어떻게 외워야 하는지 속이 뒤집어질 정도였다. 요즘은 영어단어를 외우는 탁월한 기법들이 많이 나와 있지만, 인터넷도 없고 학원도 안 다니고 부모도 신경 안 쓰는 할머니 밑에 자라며 혼자서 영어단어를 외우는 기법을 터득하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그냥 무작정 외워보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영어단어 외우는 건 도저히 되지가 않았다. 나중에 어른이 된 다음에야 난 이렇게 말했다. '저는 영어 단어를 못 외우는 장애가 있어요.'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는데, 매주 금요일 마지막 시간은 특별활동 시간이었다. 1학년 땐 회화부에 들어가서 그림 그리며 놀았는데, 2학년땐 회화부에 들어가지 못했다. 내가 동작이 느렸던지 다른 애들보다 손을 늦게 들었고, 결국 마지막 남은... 아무도 안 가는 종교반에 들어가게 됐다. 하~~~ 종교반. ㅠㅠ

첫 특별활동 시간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반에 들어갔더니... 헙... 종교반 선생님이 영어 선생님이었다. 1학년 영어선생님 말고. 선생님은 날 알아보셨다. 그러고는 반가워 했는데,,, 날 기억할 수밖에 없었다. 이 영어선생님은 매주 단어시험을 봤는데, 난 한두 개만 맞췄기 때문이다. 영어단어 틀린 숫자대로 때렸는데,,, 매주 4~50대씩 맞았다. 그러니 날 기억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내가 2학년 때 8번이었는데,,, 영어선생님은 꼭 이상하게도 질문을 한 다음 아무도 손을 안 들면 8번을 불렀다. 그럼 반 애들이 웃고 난리였다. 선생님은... '아,,, 맞다. 8번은 영진이지. 미안해. 앉아라.' 라고 했다. 난 그정도로 영어 못하는 아이로 이름이 나 있었다. 나중에 영어선생님이 날 불렀다.

'내가 네 담임을 만나서 네 다른 과목 성적을 봤어.'

그러곤 한참을 말이 없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내가 선생 생할 하면서 이런 성적표는 살다살다 처음 봐. 다른 과목은 전부다 90점 이상이네. 영어만 24점이야. 시험 문제 풀긴 한 거니?'

'아니요. 그냥 다 찍었어요.'

그날 대화를 통해 영어 선생님은 많이 답답해 했을 것 같다. 만약 그 영어 선생님이 나를 인간 만들어 놨다면 내가 어디 방송국 같은데 나가서 '나를 인간 만들어준 분은 ㅇㅇ 영어선생님입니다. 그 선생님 덕분에 제가 지금 이 자리에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라고 말할 텐데. ㅎㅎㅎ 암튼 그 후로 그 영어 선생님과의 인연이 조금 더 이어졌으니 바로 특별활동이었다.

종교반. 난 종교반이라고 해서 그냥 종교에 대해 뭔가를 한다고 생각했는데,,, 그 종교반은 기독교 반이었다. 모이면 교실에서 복음성가를 부르고 성경을 읽고 성경공부를 했다. 전혀 재미 없었는데, 첫 시간에 선생님이 했던 말이 기억난다.

'전 학교는 여학교였고, 전전 학교도 여학교였어. 남자 학교에선 근무해본 적이 없어서 기도했지. 다음 학교도 여학교로 보내주시고, 다음 학교에도 특별활동에 종교반이 있는 학교로 보내주세요. 난 계속 특별활동 종교반 선생님을 했거든. 그런데 이렇게 남학교로 보내주셨네. 그래도 다행인 건 종교반이 있다는 거야.'

난 이 인사말이 무슨 뜻인지도 모르면서 오랫동안 기억했다. 나중에 교회를 다니면서야 저 인사말의 뜻을 알았는데도 말이다. 얼마나 인상깊었으면. 이 영어 선생님은 특별활동 시간에 아무도 성경을 안 가지고 온다며 손바닥만한 신약성경을 나눠줬고, 종교라는 특성 때문에 지루해 할까봐 선물을 걸고 성경퀴즈 같은 것도 했다. 난 이땐 종교에 관심도 없었고, 오고 싶어 온 반도 아니었으며, 머리도 멍청해서 한 문제도 맞추지 못했다.

나중에 2학년이 끝나고 3학년이 될 때 선생님은 많이 아쉬워 했다. 그 선생님은 혹시 날 기억하실까? 영어 24점에 영어를 제외한 모든 과목이 90점 넘던 괴상한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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