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작가 응모작 | 소설 부문 | 기억 여행자의 낙서질 note 4-3

in zzan •  2 years ago 

초등학생 시절에 가본 교회 이야기는 이게 전부다. 난 신의 존재를 믿었으나 인간은 무식해서 그 신의 존재를 알 수 없다고 생각했다. 사실은 인간이 무식한 게 아니라 내가 무식한 거지만. 암튼 난 신의 존재를 믿긴 했다. 진화론을 거부하는 지식인으로, 과학을 믿는 현대인으로 신의 존재를 믿었다. 그러나 그 신이 누구인지 궁금하진 않았다. 어차피 인간은 신이 누군지 알 수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러면서도 난 신을 저주했다.

내가 일기장을 쓴 게 중2 때부터다. 그당시에 펜팔이 있었는데, 그 펜팔의 권유로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난 멍청할 뿐만 아니라 글쓰기도 너무 못해서 편지를 쓰려고 해도 한 장을 채우기 힘들었다. 그런데 펜팔은 늘 두 장은 꽉꽉 채워서 편지를 써줬다. 한번은 한 장을 겨우 채우는 내 글솜씨가 부끄러워 물었다.

"어떻게 해야 누나처럼 편지를 잘 쓸 수 있어?"

"일기를 써봐."

내가 2부에선가 3부에선가 이 누나를 언급한 적이 있는 것 같다. 난 중1 12월에 이사를 했는데, 이사 전 앞집에 사는 나보다 한 살 많은 누나가 있었다. 말은 별로 없고 착한 누나였는데, 내가 이사를 간다고 하니까 꼭 편지를 써달라고 했다. 웬 편지? 난 그냥 하는 인사인 줄 알았다. 그런데 이사가고 나서 오랜만에 놀러갔더니, 누나가 왜 편지를 안 써주냐고 기다렸다고 했다. 그때야 여동생이 이렇게 말해줬다.

"오빠 몰랐구나. 그 언니가 오빠 좋아해."

내가 워낙에 잘생겨서 따라다니는 여자가 많긴 했지만 편지를 받아본 적은 없었다. 그런데 그 누나가 내게 먼저 편지를 썼고 난 무식한 머리를 굴려 굴려 답장을 써주곤 했다. 편지를 한참 주고받던 시절 난 그 누나가 나를 좋아하나는 걸 확신하게 됐고 그래서 물었다.

"누나, 나 좋아해?"

"야, 그걸 뭘 말로 해야 아냐? 부끄럽게 뭘 그런 걸 물어봐."

"그럼 나랑 결혼할 거야?"

"야, 그건 안 돼. 내가 한 살 더 많잖아."

ㅋㅋㅋㅋㅋ 이 초딩스러운 대화. 아니지, 요즘 초딩도 이런 대화를 안 할 텐데. 난 순수해도 너무 순수했고 몰라도 너무 몰랐다. 그렇게 우린 3년 정도 펜팔을 했고 이젠 조금 더 어른이 돼서인지 나를 덜 좋아해서인지 펜팔이 끝나고 말았다. 누나의 권유로 펜팔을 했고, 누나의 부탁으로 펜팔을 끝냈다.

암튼... 난 일기를 누나가 써보라고 해서 쓰기 시작했다. 편지지 한 장도 못 채우는 글실력이 일기라고 제대로 쓸리 없었다. 일기장도 한 장을 채우기 힘들었고, 난 일기장에 일기를 쓰는 것보다 일기장을 예쁘게 꾸미는 걸 더 좋아하게 됐다. 문구점에서 파는 연예인 스티커로 일기장을 도배한 다음 색색 펜으로 내지도 예쁘게 꾸몄다. 그렇게 시작한 일기는 어느순간 갑자기 불이 붙었고, 군대 가기 전까지 23권인가 쓸 정도까지 일기쓰기를 좋아하게 됐다.

일기쓰기에 불이 붙은 건 사춘기 때문이었다. 그래, 누구에게나 오는 사춘기. 반항의 아이콘. 난 일기장에 신을 욕하기도 하고, 할머니와 할아버니 얘기도 쓰고 미래의 나에 대해서도 썼다. 그러다가 소설 한 권을 만났는데 너무 재밌어서 20번 쯤 읽은 것 같다. <가슴 속엔 박하향>이라는 청소년 성장소설이다. 난 이 소설을 외울 지경으로 읽고는 '나도 소설가가 되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게 됐고, 중 3 때부터인가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중 3때 장편 하나, 고 1때 장편 하나. 이렇게 학창시절 동안 두 편의 장편을 썼다.

나의 중학교 시절은 특별한 게 없었다. 키가 워낙에 작았고 삐쩍 말랐으며 매일 같은 옷에 더럽고 공부도 못하는 꼬마였으니 당연했다. 먹지 않아, 먹지 못해 작고 삐쩍 말랐다. 항상 얻어 입는 옷이라서 그런지 옷은 늘 그지같았다. 새 신발 따위도 없었다. 아빠도 없고 엄마도 없는 집엔 어느 누구도 공부하라고 잔소리 하지 않았다. 초등학생 땐 내가 그정도로 공부를 못하는지 몰랐다. 초등학교 성적표엔 등수가 없으니까. 중학교에 입학하고 첫 모의고사를 봤는데, 50명 중에 48등인가 나왔다. 거의 꼴찌였다. 머리가 워낙에 멍청해서 수업을 못 따라갔던 것 같다.

내가 48등이었으니 뒤로 두 명이나 더 있었는데, 꼴등이 나와 이름이 반대인 진영이었다. 진영인 다운증후군이었고 반에 친구가 없는 왕따였다. 난 머리가 멍청하긴 했어도 왕따는 아니었다. 한번은 담임이 자기 수업시간에 글짓기를 하자고 했다.

"진도가 늦지 않으니까 우리 오늘은 수업 말고 다른 거 하자."

담임은 영어 선생이었기에 수업이 잦았다. 영어 수업은 거의 매일 있었으니까. 그래서 자기 수업 시간에 자주 재밌는 걸 했다. 한번은 조끼리 숙제를 풀게 해줬는데 이런 문제였다. 지구가 망해서 탈출해야 하는데, 우주선엔 5명만 탈 수 있다. 재벌, 의사, 인류학자, 물리학자, 교사, 공무원... 뭐 이런 식이다. 여기서 다섯명만 우주선에 태워야 했다. 다섯 명을 고른 다음엔 왜 이 다섯명을 골랐는지 발표하는 식이었다.

담임이 칠판에 적은 글자는 '손가락'이었다.

"이번 한 시간 동안은 손가락이라는 주제로 글쓰기를 할 거야."

그러곤 갱지 한 장 씩을 나눠줬다. 난 뭘 썼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그날 종례 시간에 담임이 하나만 읽어줬고, 그 내용은 생생하게 기억난다. 담임이 읽어준 내용은 이랬다. 다섯 손가락 깨물이 안 아픈 손가락은 없다. 우린 모두 하나고 같은 반 친구다. 진영이는 가장 작고 힘이 없는 새끼손가락이다. 우리가 진영이에게 친구가 되어주자. 부반장이 쓴 글이었다.

난 그 글에 감동을 받았고 그날 이후로 반 친구들이 진영이에게 잘해줄 거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부반장은 글만 그렇게 써놓고 진영이에게 단 한마디도 안 했다. 부반장 패거리들은 예전처럼 진영이를 괴롭히기까지 했다. 난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나서야 할 것 같았다.

내가 나서도 될까? 난 키도 작고 삐쩍 말랐고 더럽고 냄새나고 공부도 못하는 별볼일 없는 아인데. 그러다가 용기를 내기로 했다. 하루는 하교길에 우연히 마주친 척 하면서 말을 걸었다.

"집이 어느 방향이야? 같이 갈까?"

"어? 난 저 쪽."

우리집과 방향이 완전히 달랐다.

"어? 나랑 다르네. 그래도 저기 큰 길까지만 같이 가자."

그렇게 우린 친해지기 시작했다. 친해지고 나니 그동안 너무 잘못 생각했다는 걸 깨달았다. 다운 증후군이고 꼴등이라서 엄청나게 멍청할 줄 알았는데, 진영인 멍청하지 않았다. 말도 잘했고 지식 수준이 나와 별로 차이 나지도 않았다. 하긴 48등이나 50등이나지만. 아, 그래. 내가 멍청해서 멍청한 사람끼리 잘 통했는지도 모르겠다. 암튼 내가 느낀 진영인 보통사람과 전혀 다르지 않았다. 말이 조금 느릴 뿐이고 가끔 독특한 생각을 한다는 것만 빼면 보통 사람과 다르지 않았다.

진영인 내게 많이 고마워 했다. 그래서 집에도 부르고 극장에도 데려가 주곤 했다. 진영이 엄마도 날 무척이나 좋아했다. 아마도 진영인 나 이후로는 친구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나중에 어른이 된 다음 딱 한 번 전화를 받았는데, 진영인 어른이 되어서도 날 기억하고는 내게 전화를 했던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반 애들이 나를 왕따시키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담임이 날 칭찬한 이후였다. 담임은 누군가가 진영이의 친구가 돼주길 바랬는데, 내가 그 역할을 했고 반친구들 앞에서 나를 칭찬했다. 그날 이후로 부반장 주도로 왕따가 시작됐다. 내 물건을 발로 밟고, 내 책을 찢고, 다리를 걸어 넘어지게 했다. 그리고 어느 누구도 말리지 않았다. 부반장은 반에서 실세였고 그를 따르는 애들이 너무 많았다. 난 이해도 안 됐고 혼란스러웠다. 손가락 글을 쓴 부반장이 아니던가. 그런데 진영이와 친해졌다고 왕따를 주도하다니. 그리고 부반장의 왕따를 이어받은 한 명. 그 놈은 내가 이름도 기억한다. 내가 일기장에 그놈 이름을 수십 수백번을 적으며 죽어버리라고 저주를 했으니 잊을 수가 없다. 그놈은 앞장서서 나를 패기 시작했고 부반장보다 더 잔인하게 나를 괴롭했다. 그놈도 부반장 패거리 중 한 명이었고 난 그 패거리에 집단 괴롭힘을 처절하게 당했다.

겨우 중학교 1학년 짜리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었다. 반에서 꼴등인 다운증후군 진영이와 친해진 후 담임의 칭찬이 만든 반 아이들의 질투와 집단따돌림. 난 이 충격적인 경험을 이해하려고 30년 넘게 고민하고 사유하고 썼다. 사람은 원래 악한가? 난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게으를 뿐이다. '내가 나서지 않아도 누군가가 나설 거야.'라고 생각하는 게으름과 두려움. 내가 집단괴롭힘을 당할 때 한 명만 도와줬어도 중학교 1학년이 그토록 지옥같진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어느 누구도 도와주지 않았다. 그렇다고 50명 중에 48명이 악한 사람일까? 아니다. 집단괴롭힘을 주도한 10여명을 제외한 30여명은 그냥 지극히 평범한 사람일 뿐이었다. 내가 안 해도 누군가가 해줄 거라고 생각하는 지극히 보통인 사람. 집단 따돌림의 경험은, 그당시엔 너무 힘들었지만, 내 평생에 깊은 사유를 하게 해준 좋은 경험이었다. 난 덕분에 다양하고 깊은 글을 쓰게 됐으니까.

(다음에 이어서...)

Authors get paid when people like you upvote their post.
If you enjoyed what you read here, create your account today and start earning FREE STEEM!
Sort Order:  

좋은 결과 있길 응원합니당~💙

Posted using Partiko Android

고맙습니다. ㅎㅎㅎ

행복한 💙 오늘 보내셔용~^^

Posted using Partiko Android

코인이야기를 다루는 저로서는 지금상황을 지켜보니 너무암울하네요. 공모작 당첨가즈아~~~^^

좋은 날이 언젠가는 올 거라고 믿어요. ㅠㅠ

저는 수필이나 한편 써야 겠네요^^

수필 응원합니다. ^^

그런 일이 있으셨군요...

제 생각에 나하님은 그 시절 참 순수하셨어요 머리와 마음과 행동이 따로놀지 않는

우움 부반장이었던 아이는 인정욕구가 심히 강했던 것 같아요 나머지 반 사람들은 그냥 보통의 평범한 사람들 귀찮거나 괜히 나까지 불똥튈까 두렵거나...

억울한 감정보다 좋은 경험으로 승화시키는 거 보니 강한 분이시네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