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작가-수필] 사진의 존재 의미

in zzan •  2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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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할아버지께서 소천하신 후, 할머니는 줄곧 혼자 지내신다. 부모님께서 함께 살자고 하였지만, 60년을 넘게 살던 곳을 떠나시는 게 쉽지 않으셨는지 혼자서 지내신다고 말씀하셨다. 본가와 멀리 떨어져 있다는 핑계로 일 년에 서너 번 방문하는 게 고작인 나로서는 할 말이 없는 게 사실이지만, 할머니를 떠올리면 적지 않게 걱정이 된다. 특히나 겨울철에는 난방뿐만 아니라 감천 동네의 좁고 가파른 계단들이 여간 걱정되는 게 아니다. 혹여나 하는 생각에 전화나 한 번씩 더 드리면서 짧게나마 이야기 상대가 되어 드리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라고 생각한다.

지난번 할머니 댁에 들렀을 때, 침대 위에 있는 사진을 한 장 발견했다.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상당히 닳아 있었다. 할머니께서는 매일 이 사진을 들여다보시며 우리들을 생각한다고 하셨다. 할머니와 함께 사진을 보다가 '나도 이제 사진 속의 내 나이만큼 큰 아이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할머니한테는 언제까지고 어린 손자로 보이시나 보다. 지금 둘째의 모습이 내 어린 시절과 많이 닮았네.' 등등 여러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할머니께서 사진을 쓰다듬고 입맞춤을 하시는 걸 보고 사진의 존재 의미를 깨달았다. 빛바랜 사진 중 하나에 불과하지만, 형과 나의 순수한 미소가 담긴 이것은 적어도 할머니에게 위안을 주고 사랑을 불러일으키는 존재였다. '단순히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홀로 지내는 외로움, 배우자를 잃은 슬픔, 조금씩 다가오는 게 느껴지는 죽음에 대한 공포를 잊게 해주지는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끔 존재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볼 때가 있다. 특히 아이들을 통해서 그런 생각을 많이 가지게 된다. 아주 작고 미력한 존재지만, 가만히 바라만 보아도 사랑과 행복을 느끼게 하는 신비로운 존재들이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아이들이 아장아장 걷는 것만 보아도, 음식을 잘 먹는 것만 보아도, 더듬거리며 말하는 것만 보아도, 사랑스럽게 보일 때가 많다. 아이들을 제외하고 세상 어떤 사람이 단순하게 걷는 것, 먹는 것, 말하는 것을 보면서 사랑을 느낄 수 있을까? 일상적인 것도 특별하게 만드는 존재의 힘. 아마도 할머니에게만큼은 이 사진의 존재가 그런 의미를 가지지 않을까 하고 개인적으로 바라본다.

사실 나는 할머니를 자주 뵙지 못하는 불효를 사진 한 장으로 위로하는 파렴치한 존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언제나 할머니의 침대에서 하루의 시작과 끝을 함께하며 위안을 주는 존재의 일부가 될 수 있음에 감사하고 또 감사한다. 우리의 존재 자체가 또 다른 누군가에게 사랑과 행복과 평온을 주는 사람이 된다는 사실을 항상 명심하기를!

할머니. 늘 건강하세요.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참여 부분 : 수필
참여자 : @epitt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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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좋은 글입니다. 역쉬 팥쥐님은 작가님!!

부끄럽습니다 ㅠㅠ
도잠님에 비하면 졸필 수준인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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