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부전 경판본 현대어역(1)

in krsuccess •  2 months ago 

경상도와 전라도 두 곳이 만나는 곳에 형제가 살았다. 형 이름은 놀부, 동생 이름은 흥부였다. 놀부는 마음 씀씀이가 고약했다. 부모님이 돌아가시자 놀부는 부모님이 살아 계실 때 동생 흥부와 나눴던 논과 밭을 홀로 차지했다. 또 놀부는 착한 흥부를 몹시 구박했다. 놀부는 흥부를 마을 앞산 언덕 아래에 내버려 두고 오는가 하면, 집을 나서며 흥부를 놀리고 들어와서는 비웃었다. 어찌 몰상식한 인물이 아니겠는가?

놀부가 하는 행동을 나열하면 이러했다.

장례식 치르는 데서 즐겁게 춤추기, 불 난 곳에 부채질해 바람 넣기, 아이 낳을 때 옆에서 개나 닭 죽이기, 시장 가서는 억지로 물건값 깎기, 집안에서 고약한 행동하기, 우는 아이 엉덩이 때리기, 갓난아이에게 똥 먹이기, 아무런 잘못도 없는 사람 뺨 때리기, 돈 빌려주고 아내 뺏기, 노인의 목덜미 잡기, 아이 밴 여자 배 차기, 우물에 똥 누기, 벼 심은 논에 물빼기, 잔칫집 음식에 모래 붓기, 한창 자라는 이삭 자르기, 논두렁에 구멍 뚫기, 호박에 말뚝 박기, 곱사 엎어 놓고 발꿈치로 밟기.

생각과 행동이 과연
모과나무[성격이 모난 모(母: 어머니)]의 아들이었다. 이렇게 못된 행동을 했으나, 놀부는 집안이 부자여서 좋은 옷을 입고 좋은 음식을 먹으며 편하게 살았다.
흥부는 제대로 지은 집도 없었다. 집을 제대로 지으려면 아주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 작은 나무, 큰 나무를 요란스럽게 베어다가 안방, 마루, 본채, 창살문, 미닫이문 등등을 빼놓지 않고 네모반듯하게 만들어야 했다. 그러나 흥부가 지은 집은 그렇지 않았다. 흥부는 집을 짓겠다며 수숫대 한 단을 베어다가 안방, 마당, 본채를 지었다. 흥부 딴에는 지붕까지 튼튼하게 지었으나, 짓고 보니 베어왔던 수숫대가 반이나 남았다.
흥부 부부가 방 크기는 생각지도 않고 기지개를 쭉 켰다. 두 발은 마당으로 나가고 머리는 맹인이 대문을 찾아가듯 어느새 제멋대로 뒷마당으로 나왔다. 엉덩이는 울타리 밖으로 나갔다. 동네 사람이 이 모양을 보고서 말했다.

“이보게 이 엉덩이 불러들이소.”

동네 사람 말을 듣고 흥부가 깜짝 놀라 큰 소리로 울었다.

“아이고, 답답하고 서럽구나. 어떤 사람은 타고난 운명이 좋아서 높은 관직을 얻고, 크고 좋은 집에서 살면서 이름을 알리며 좋은 옷을 입고 좋은 음식을 먹으며 산다. 그런데 내 운명은 어찌 이러한가. 그릇처럼 작은 집에 별빛만 마당에 가득하구나. 방에 누워서도 별이 보이네. 푸른 하늘 구름에서 가랑비라도 내리면 그대로 다 맞는구나. 방안에 비가 제일 많이 내려서 문밖에 가랑비라도 오면 방안은 더 큰 비가 내리는구나. 깔개는 찢어졌고 얇은 바지는 낡기까지 했네. 차가운 방바닥에 찢어진 깔개 깔고 앉았으니, 벼룩과 빈대가 내 피를 빨아 먹는다. 앞문은 종이 없이 창살만 남았고 뒷벽은 흙벽 없이 수숫대만 남았으니, 길고 긴밤 찬바람이 마치 칼로 살을 베는 듯하구나. 어린 자식은 젖을 달라고 조르고 더 큰 자식은 밥 달라고 조르니 서러워서 못 살겠네.”

이렇게 가난했지만, 흥부는 해마다 자식을 낳았다. 자식이 서른 명쯤 되니 저마다 옷을 입힐 수가 없었다. 그래서 자식을 모두 한 방안에 몰아넣고
큰 멍석에 마련해서 자식 숫자에 맞춰 머리 내놓을 구멍만 만들어서 씌웠다. 한 아이가 똥이 마려우면 남은 형제자매가 마치 시중을 드는 하인처럼 우르르 따라갔다.
이렇게 사는 중에 자식들은 갖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을 다 말하는구나.
한 명이 나오면서 말했다.

“어머니, 고기 끓여 만든 육수에 갖은 채소를 넣은 따뜻한 탕국에 면(麵) 넣어서 먹고 싶어요!”

또 한 명이 나오면서 말했다.

“어머니 양념한 돼지고기에 채소랑 해산물 넣어서 끓여 먹고 싶어요!”

또 한 명이 나오면서 말했다.

“어머니, 소고기 넣어 끓인 국에 흰 쌀밥 먹고 싶어요!”

또 한 명이 나오면서 말했다.

“어머니, 대추 넣어서 만든 찰떡 먹고 싶어요!”

흥부 아내가 말했다.

“아이고, 지금 호박만 넣고 끓인 국도 먹지 못하고 있는데 보채지 마라.”

또 한 명이 나오면서 말했다.

“어머니, 배꼽 아래가 간질간질해요. 결혼하고 싶으니 아내를 구해주세요.”

자식들이 이렇게 아우성치니, 무엇을 먹여서 키워낼 수 있을까? 집안에 먹을 것이 있든지, 없든지 밥상은 늘 뒤집혀 네 다리가 위로 향해 있었고, 솥단지는 벽에 걸렸고, 쌀 씻는 조리는 달랑달랑 걸려 있었다. 달력을 봐서 두 달에 하루, 세끼 가운데 한 끼만 밥을 지어 먹었다. 생쥐가 쌀알을 훔쳐먹으려고 흥부 집을 밤낮 보름을 다니다가, 못 먹고 발품만 팔아 다리를 다칠 정도였다. 생쥐가 다리 아파서 앓는 소리가 동네에 울려 퍼져서 동네 사람이 잠을 자지 못했다. 상황이 이 지경이니, 어찌 흥부가 서럽지 않을 수 있겠는가?

흥부 아내가 말했다.

“아들아 딸아 울지마라. 젖 달라고 조른들 뭘 먹고 젖이 나오겠느냐? 밥 달라고 울어도 어디서 밥이 나오겠느냐?”

아내가 아이들을 달랠 때에도 흥부는 돈 벌 생각을 하지 않았다. 흥부는 마음씨가 착하고 깨끗해 마치 맑은 물과 같았고 중국 곤륜산(崑崙山)에서 캐는 옥돌과 같았다. 성인의 가르침을 본받고 나쁜 사람을 싫어하며 돈에 대한 욕심이 없고 술과 여자도 좋아하지 않았다. 성격이 이러했으니 흥부가 돈을 벌려고 애쓰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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