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관성적인 통합진보정당 건설론을 언제까지?

in kr-party •  2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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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현식 _ 노동·정치·사람 정책위원

21대 총선 직후 열렸던 한 토론회에서 “범진보진영이 세력연합적인 대중적 진보정당을 건설”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당시 발제자는 “범사회주의 세력이 하나의 세력이 되어 … 범진보진영의 지도중심이 되어야 하고 … 농민과 빈민이 특정 정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를 걸고 민주노총과 함께 노동자 민중의 진보정당 건설”이라는 단계론 내지 전략론도 제시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노동정치/진보정치를 둘러싼 정세, 분열된 노동정치/진보정치 진영의 원인과 한계, 노동정치/진보정치의 이념적 및 철학적 방향성, 노동정치/진보정치의 우군이자 주력이어야 할 노동자·농민·빈민 등 제 계급의 입장을 제대로 분석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 결과 세력연합적 진보정당 건설 주장은 당위론만 반복한 채 끝나고 말았다.

‘세력연합적 진보정당’이라는 생소한 표현을 귀에 익은 말로 바꾸면 ‘통합적 진보정당’이다. 통합적 진보정당은 언젠가는 추진해야 할 목표일 수 있다. 하지만 현실적 판단 없이 당위적으로 주장하는 통합적 진보정당 건설론은 설득력이 없다. 무엇보다도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분당, 통합진보당 결성 과정에서의 파행, 통합진보당과 진보정의당의 분당, 진보신당과 사회당의 분당과 내부 갈등, 통합진보당의 강제해산, 자유주의 보수정당의 하위파트너를 극복하지 못하는 진보정당의 한계 등에 대한 평가와 대안을 명확하게 제시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다시 ‘통합’이라는 말을 꺼내 봐야 사회적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연이은 노동정치/진보정치의 퇴조를 보며 대중들의 신뢰는 사라져갔다. 더구나 과거 노동정치/진보정치를 함께했던 활동가 중 상당수가 2012년 총선과 대선을 경유하며 과거와 달리 노골적으로 우경화되었다. 노동운동의 유력한 인사들이 민주당의 선거운동에 동참했을 뿐 아니라 적극적으로 민주당의 각 선거 후보자가 되려고 노력했다. 이렇게 주체가 해체되는 상황은 노동정치/진보정치 자체가 존속하고 있는지를 의심해야 할 지경이다.

특히나 우려되는 부분은 지역과 현장이 흔들리고 있다는 점이다. 통합적 진보정당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지역과 현장을 강조한다. 지역과 현장이 무너짐으로써 노동정치/진보정치가 무너졌다고 이야기한다. 따라서 지역과 현장을 살려야 노동정치/진보정치가 살아난다는 교과서적인 주장을 반복한다. 그런데 이러한 논의들은 결과론적 인과론일 뿐이다. 왜 어떻게 지역과 현장이 무너졌는지, 어떻게 다시 살릴 수 있을지에 대한 논의는 답보상태다.

의회종속적 정치활동에 대한 평가, 명망가에 대한 구속력과 당 중심적 구심력 붕괴에 대한 비판, 정세의 변화와 정치지형의 재구성에 대한 판단 등도 면밀하게 진행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러한 과정들과 숙의를 거듭하면 할수록 현시점에서의 통합적 진보정당 건설 논의는 현격하게 현실성을 결여한 것으로 보인다.

주요 선거의 결과를 전제로 논의되는 통합론, 선거가 닥치면 불거지는 통합론은 이해관계의 조절을 위해 이합집산하는 보수정당들의 논리와 본질적으로 다를 바가 없다. 상황 논리에 따라 전개되는 이런 식의 통합론은 다시금 노동정치/진보정치의 분열을 예비할 뿐이다. 경험을 했으면 깨닫는 게 있어야 한다.

논의를 정리하는 차원에서 좀 더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현 단계에서 통합적 진보정당을 속히 구성하자는 주장은 환상일 뿐이다. 무엇보다도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물적 토대가 침식된 상태다. 민주노총조차 당장 각 진보정당 중 하나를 배타적으로 지지할 수 없는 입장이다. 그러다 보니 지난 수년간 민주노총은 ‘다원적 진보정치’라는 어중간한 입장을 취했다. 말이 좋아서 다원적 진보정치지, 실제로는 민주노총이 조직적 차원에서는 어느 정당도 지지하지 않겠다는 것일 뿐이다.

이러한 정체 상태를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통합 진보정당이 필요하다는 논리가 가능하다. 하지만 민주노총은 통합적 진보정당을 추동할 정치적 동력이 없다. 통합적 진보정당이 만들어지더라도 민주노총이 배타적 지지를 할 여력도 없다. 노동정치/진보정치의 기반 자체가 멸실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은 민주노총에서만 발견되는 것이 아니다. 민중운동 진영 전체가 같은 문제에 직면해 있다. 지역과 현장의 조직적 요구의 분출이 만들어내는 정치방침이 없다면, 통합적 진보정당이 등장한다고 하더라도 민주노총이든 다른 어떤 민중운동조직이든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그러므로 통합적 진보정당 건설이라는 당위적 목표는 중장기과제로 설정할 수밖에 없다. 이를 당장의 과제로 설정하고 자원을 총동원하자는 주장은 난망한 동시에 무책임하다. 지금 필요한 건 대중운동 전반이 정치적 부담을 최소화하면서 직접적인 개입과 참여를 통해 실질적인 성과물을 만들어내는 정치적 기획이다. 그 기획의 하나가 바로 지역정당운동이다.

하지만 여전히 지역정당운동을 제안하면 난색을 표하는 사람들이 많다. 각 정당에 속해 활동 중인 당원은 물론, 노동조합의 활동가, 지역의 주민활동가 중에서도 지역정당운동은 썩 달가운 논의주제가 되지 못한다. 지역정당운동에 동의하고 적극적으로 참여 의사를 표하는 활동가는 극히 드물다.

그 이유는 첫째, 통합적 진보정당 건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둘째, 지역정당에 대한 상당한 오해 때문에 이 운동을 꺼리기 때문이기도 하다. 첫 번째 문제는 앞서 간략히 논의를 했으니 이제 두 번째 문제에 대해 짚어보기로 하자. 도대체 지역정당의 어떤 측면이 우려된다는 것일까?

낯선 것에 대한 경계심은 당연하다. 그러나 미심쩍다고 해서 계속 경계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중요한 일을 하기 전에 꼼꼼히 따져보는 과정은 필요하다. 위험요인은 제거하고 가능성에 도전해야 한다. 이제 지역정당에 제기되는 의구심들에 대해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검토해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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