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작가 응모작- 수필] 호박꼭지 타고 가는 여행

in SteemZzang •  2 months ago  (edited)

며칠전 앞집에서 호박이 많이 달렸다며 몇 개 들고 왔다.
그런데 호박 반찬을 해 먹은지 얼마 지나지 않을 때라 나중에 먹어야지 하면서 지나갔다.

더운 날씨를 핑계로 시원한 것만 찾으며 밥을 잘 먹지않고 지나가다 아침에 호박 생각이 났다. 꼭지 부분이 상하려고 군데군데 색이 변해 있었다. 빨리 먹어야하겠기에 새우젓을 넣고 볶아먹기로 했다. 반달 모양으로 호박을 썰고 끝부분이 남았다.

도마 위에 남은 호박꼭지를 쓰레기통에 버리려던 동작이 정전 된 기계처럼 멈췄다. 그리고 호박꼭지를 붙들고 과거로 갔다. 시골에서는 여름이면 대부분의 집이 가지 호박 오이나 풋고추가 반찬이다. 그리고 호박은 한 번에 많이 달리기 때문에 미처 다 먹지 못하고 버리는 경우가 허다했다. 특별히 아까워하지도 않았다. 야채가 물러서 상할 것 같으면 들고 나가 밭에 휙 던지면 그만이다. 곡식은 하다못해 개라도 주어야 하는 것으로 알지만 푸성귀는 곡식에 비해 얻기도 쉬운 편이라 그렇게 아등바등 하는 일이 없었다. 밭에 버리면 썩어서 거름이 되기 때문에 그렇거니 하고 지나갔다.

그렇게 귀한 대접을 받지 못하는 호박도 쓰임새는 많았다. 못 생긴 여자를 호박에 비해도 손부리 야무진 여자도 있듯 그 하찮은 호박도 쓰임새가 다양했다. 썰어 말려서 호박고자리를 만들고 누렇게 늙으면 서리 올 무렵 길게 켜서 울타리에 걸어 얼말렸다 한 겨울 떡에 넣으면 별미였다. 또 추운 겨울날 호박죽은 별미였다.

그러나 당연히 버려져야 하는 호박꼭지 부분도 마지막 소임을 다할 중요한 역할이 있었다. 프라이팬이 없던 시절 화덕 위에 소당이라고 부르는 무쇠솥 뚜껑을 뒤집어 앉히고 전을 부쳤다. 호박전도 부치고 부추전도 부치고 때로는 수수전병도 그렇게 했다. 그때 기름을 적당히 바르는 도구가 바로 호박꼭지였다. 혹가다 무를 꼭지 모양으로 잘라서 쓰기도 했지만 여름철에는 대개 호박꼭지가 쓰였다.

넓은 소당 위에 호박꼭지로 기름을 두르고 반죽을 한 국자 떠 올리면 치익 하는 소리로 반응했다. 국자를 빙글빙글 돌리고 조금 기다려 뒤집으면 금새 익었다. 할머니께서 한쪽 떼어 호호 불어 새끼 제비처럼 입을 벌리고 있는 우리들 입에 넣어주셨다. 살면서 힘든 고비를 만나게 되면 그런 소소한 추억의 도움으로 넘길 때가 많다.

잘 지은 집도 대물림을 하려 하지 않는 세상이지만 그래도 가끔 꺼내보며 입가에 미소가 번지게 할 추억 하나쯤은 물려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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