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한 조각

in SteemZzang •  6 months ago 

엄마는 언제나 신이났다.
아침이면 늦게 일어나는 나와 동생을 깨워 씻기고 밥을 먹이고 학교 보낼 준비에 정신이 없었다. 동생은 남자라서 세수만 하면 특별히 할게 없었지만 나는 매일 머리를 이렇게 빗겨라 저렇게 묶어라 하면서 주문이 많았다. 조금만 마음에 들지 않으면 입이 튀어나왔다.

그래도 엄마는 두 말도 안하고 다시 묶어주었다. 예쁜 핀도 꽂고 방울이 달린 리본으로 묶으면 얼굴이 꽃처럼 예뻤다. 옷도 만화영화에 나오는 공주 드레스 같은 옷을 좋아해서 매일 예쁜 옷과 구두를 사날라야 했다.

동생은 엄마 손만 안 가는 게 아니라 무엇이든 알아서 했다. 학교 숙제도 알아서 하고 학원도 군소리 안하고 다녔다. 그러면서 태권도를 배우고 싶다고 하며 꼭 보내달라고 했다. 당연히 열심히 했고 집에서 곧잘 시범을 보이기도했다.

그렇지만 나는 무슨이라나 엄마를 불러댔다. 머리 빗는 것 뿐만 아니라 학교 숙제도 혼자 못해서 절절 맸다. 만들기나 그리기는 엄마 손이 가지 않으면 아무것도 못했다. 피아노 학원도 처음에는 잘 다니는 것 같다 금방 시들해지고 미술학원 가고싶다고 졸라서 기껏 등록하고 다니기 시작하면 몇 달 못가서 그만두었다.

그렇다고 공부를 잘 하는 것도 아니었다. 동생은 공부도 잘 해서 학교에서도 상을 타고 선행상도 타고 온갖 대회를 나갈 때마다 상을 탔다. 그 버릇이 대학 갈 때까지 이어졌다. 명문대는 고사하고 재수를 해서도 좋은 성적이 안 나와 겨우 턱걸이를 한 나에게 보란 듯이 서울대에 합격을 했다.

동네에 현수막이 몇 개나 붙었다. 학원에서 동문회에서 아빠 친목회에서 그리고 종친회에서도 커다란 현수막을 붙여 길을 가다 보면 동생 이름이 수도 없이 펄럭거렸다. 어떤 사람이 이 동네 선거하느냐고 물어볼 정도였다.

남들이 한 집에 대학생 둘이 나왔으니 어떻게 하느냐고 해도 엄마는 전혀 걱정이 없었다. 동생이 전액 장학금을 받고 입학을 했기 때문에 어차피 내 등록금만 내면 되었다. 그리고 어차피 공부 잘하는 동생보다 내 걱정을 더 했다.

졸업식을 마치고 곧바로 백화점으로 갔다. 점원들은 한 눈에 수험생을 알아보고 온갖 조건을 제시했다. 옷도 노트북도 구두도 할인이 되었다. 미용실에도 들러 머리 손질도 함께 했다. 집에 들어와 쇼핑한 옷을 정리하는데 동생이 노트북을 키고 유튜브를 보고 있었다.

갑자기 동생의 눈앞에서 노트북이 사라졌다. 그리고 내 앞에 착지했다. 미안해 하는 건 오히려 나였다. 당연히 동생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엄마는 그것도 내 것이라고 쌀쌀스럽게 말했다. 무안했던지 동생이 일어나 방으로 들어갔다. 노트북을 들고 뒤따라 들어가려는데 엄마가 옷자락을 잡아 앉혔다.

그리고 내 손에 들려 등을 밀었다. 할 수 없이 방으로 들어 온 내가 왜 그러느냐고 하자 동생은 큰아버지가 사 주신다며 걱정 말라고 했다.

엄마는 속으로 서운했다. 아들이 잘 된거야 당연히 기뻐하고 축하받을 일이지만 한 번도 딸의 안부를 묻지 않는 시댁 식구들이 서운했다. 친정에서 자랄 때 아들 아들 하는 할머니와 엄마 때문에 오빠들에게 치이고 동생들한테도 양보하며 살았던 기억이 떠오르면 지금도 부아가 치밀었다. 딸에게는 절대 그런 일 겪게하고 싶지 않았다. 아들에게도 미리 얘기를 해 두었다.

공부 못 한다고 눈치주고 딸이라고 서운한 일 당하게 할 수는 없었다. 기죽지 말라고 그날로 선물을 사서 안겼다. 그리고 친한 사람들과 만나 밥을 먹거나 차를 마시는 자리에서도 아들 얘기는 비치지도 않고 딸자랑을 늘어놓았다.

그리고도 며칠 쇼핑이 이어졌다. 기숙사 들어가면 며칠에 한 번밖에 못 올텐데 필요한 것 미리 챙겨야 한다며 바리바리 사 날랐다. 혹시 시골서 왔다고 무시당하면 안 되니까 무엇하나 빠지는 게 있어서는 안 된다고 몇 번이나 점검을 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말하라고 하고 얼굴 핼쓱하다며 곰탕도 끓였다. 그래도 동생은 샘을 내거나 투정 하는 기색도 없었다.

전화기를 들고 있는 엄마의 목소리는 들떠있었다.
“네, 형님! 글쎄 아들 서울대학교 붙었다고 남들이 그렇게 부러워하는데
딸도 서울대학교 갔다고 하니 동네에서 다들 경사났다고 소 잡으라고 야단이예요.”

“네, 네 형님...”

“그럼요. 형님
원래 여자는 서울여자대학교를 가는 거예요. 그럼요.”

전화기를 내려놓은 엄마가 동생의 손을 잡고 웃고 동생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p.s 혹시 서울여자대학교와 관련 있으신 분들 오해 없으시기 바랍니다.
시골 동네에서 실제로 있었던 얘기입니다. 동생보다 성적이 떨어지는 딸 걱정을 하던 엄마가
친척들에게 둘러댔던 얘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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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어머니, 속 깊은 동생이네요.
따님도 자격지심 가지지말고 자신의 길을 걸어갔으면 합니다!

이렇게 따뜻한 어머니가 계셔서
어떤 환경에서도 바른 길을 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어머니 깊은 사랑이 느껴집니다.
뻥이야 친척끼리인데
애교로 넘어가면 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정도야 서로 이해 하겠지요.
무슨 이익을 취하려고 했던 거짓말도 아닌데 ...
오직 사랑하는 딸 어깨를 올려주려고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