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작가 응모작- 단편] 빚잔치

in SteemZzang •  7 months ago 

며칠을 두고 살림살이를 닦고 또 닦았다. 윤기가 반질반질한 장롱을 닦으며 시집올 때 친정엄마가 하신 말씀이 떠오른다. 장롱은 여자 얼굴과 매한가지니 매일 깨끗하게 닦으며 살아라 하시던 얼굴이 눈앞에 마주앉았다. 어쩌다 이런 일이 생겼을까 지금도 딱히 이유를 알 수가 없다. 이미 결정난 일이니 후회해도 소용 없는 일이다.

이미 집도 비워주어야 하는 처지에 단칸 셋방으로 살림살이 바리바리 싸들고 갈일도 아니었다. 이제라도 빚독촉 받지 않고 살 수 있다고 생각하니 오히려 홀가분했다. 거실에 있던 응접셋트며 옷장 속에 걸려있던 모피도 아까울게 없었다. 단란했던 한 때를 담고 있던 캠코더도 남편이 그렇게 좋아하던 오디오도 이제는 다른 사람의 것이 되었다.

장식장을 가득 메웠던 남편의 감사패와 공로패도 쓰레기에 불과했고 딸이 피아노 콩쿨에서 입상할 때 받아온 트로피도 짐 덩어리였다. 다만 딸아이 피아노와 아들 책상과 컴퓨터가 걱정이었지만 아들도 딸도 무슨 눈치를 챘는지 더 이상 무서운 아저씨들 오지 않는다는 말에 일찌감치 철이 들었다.

조그만 트럭을 불렀는데 당장 덮고 잘 이부자리와 밥솥이며 냄비쪼가리에 밥그릇에 숟가락 몇 개가 이삿짐의 전부였다. 트럭 기사도 놀라는 눈치였다. 속으로는 이게 무슨 이삿짐인가 하고 놀라는 것 같았다.

사람의 일이란 한 치앞을 모른다더니 아침에 출근한 남편이 병원에 누웠다는 경찰의 전화를 받으면서 상상도 못한 삶이 주어졌다. 뺑소니 운전 사고였다. 백방으로 수사를 하고 있다는 경찰조사도 아무런 단서를 잡지 못하고 끝이났다. 의식 없이 누운 남편은 눈도 깜빡이지 못하고 오년을 넘겼다. 일주일에 한 번 남편을 면회 하러 갈 때도 아이들은 더 이상 아빠에 대해 묻지 않았다.

대학을 나왔다고 해도 집에서 사모님으로 살던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단순노무직은 이력서에서부터 거졀을 당했고 식당에서도 거절을 당했다. 여기저기 사정을 하고 다니다 어떻게 연이 닿아 예식장에서 폐백실 예절 도우미 자리가 났다. 워낙 외모도 곱고 한복 태가 나는 사람이라 일이 많았다. 처음엔 그렇게라도 살 수 있는게 다행이었으나 아이들이 자라면서 교육비 부담이 커지기시작했다. 지인에게 그런 속사정을 털어놓고 있자니 새로 생긴 장례식장에서 장례도우미를 필요로 한다고 했다.

처음엔 무섭다는 생각도 했지만 면접을 보기로 했다. 일은 특별이 어렵지 않았지만 생활이 불규칙했다. 처음엔 장례식장에서 음식준비와 제상을 차리는 일을 거들었지만 상조회사가 생기면서 그쪽에서 교육을 받고 일해보라는 제안이 들어왔다. 아무래도 소규모 업체보다는 회사에서 일을 하면 사원복지도 잘 되어있고 장기근속 사원에게는 교육비 지원도 된다고 해서 무조건 응모했다.

전형에서 어렵지 않게 합격했다. 얼마간 연수를 하고 출근을 하면서 기왕 시작한 일이니 전문인이라는 긍지를 갖고 일을 하기로 결심했다. 언제나 남보다 열심이었고 그렇게 내일처럼 해 주는 그녀에게 고객이 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많은 직원을 거느리는 본부장이 되었고 대리점을 내게 되었다. 어느날 퇴근을 하다가 옛날 살던 동네를 지나가게 되었다. 이상하게 다른 집은 다 불이 켜있었는데 그 집창은 캄캄했다.

며칠을 지나며 잊을 줄 알았는데 이상하게 전에 살던 집의 캄칸한 창이 떠올랐다. 일부러 그 집을 찾아갔다. 그 집은 비어있었다. 주변 부동산에 알아보니 몇 차례 주인이 바뀌더니 경매에 나왔고 어느 날부터 이상한 소문이 돈다고 했다. 귀신 나오는 집이라고 소문이 났고 계약이 이루어질 듯하다가고 어떻게 알았는지 더 이상은 아무도 찾는 사람이 없다고 했다. 혹시 마음에 있으면 싸게 살 수 있게 해 주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결심을 했다. 이렇게 다시 내게 오려고 그 집에 그런 일이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그 집에서 단란하던 그 때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해졌다. 그 동안 일이 잘 되었고 아들 딸도 잘 커 사회에서 자리잡고 살게 되었다. 아이들을 불러 얘기를 했다. 모두들 괜찮다고 해서 휴일에 집을 보러 갔다. 집은 나무들이 자랐고 잡초가 우거졌지만 후박나무 밑에 놓인 의자도 그대로였다.

부동산을 찾아가 계약서를 작성하고 바로 수리를 했다. 예전에 있던 그대로 집을 꾸몄다. 아들 딸 방도 새고 꾸미고 들어오니 집안에 온기가 돌았다. 남편이 좋아하던 음악이 흘렀다. 지금 되돌릴 수 없는 사람은 남편의 부재였다. 이제라도 그렇게 애틋하던 남편의 사랑을 갚게 되었다는 생각을 하자 가슴 속에서 뜨거운 무엇인가가 솟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노을이 창을 붉게 물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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