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작가 응모작 – 단편] 미끄럼 태우기

in SteemZzang •  7 months ago 

햇볕이 군데군데 파르스름한 잔디를 일으키고 있었다.
예쁜 아리가 좋아하는 미끄럼을 타려면 부지런히 준비를 하고 나가야했다. 설거지는 나중에 하면 되고 청소기는 다녀와서 돌려도 충분하니까 이렇게 햇볕 좋을 때 아리를 데리고 나가는게 중요했다.

다행이 놀이터에는 아무도 없었다. 미끄럼틀에 성에도 햇볕에 말라 닦을 필요도 없었다. 부지런히 계단을 올라갔다. 아리를 끌어안고 주르륵 미끄러지면 예쁜 아리가 고사리손을 흔들며 까르르 웃었다. 아리의 웃음소리보다 더 행복한 건 세상에 없었다.

외손녀 아리는 혼자 키운 딸이 낳은 세상에 둘도 없는 보물이었다. 혼자 딸을 키우는 미혼모를 곱게 보는 눈은 없었다. 어느 정도 정이 들만 하면 어떻게 알았는지 동네 사람들이 수군거리며 비웃기 시작했다. 또 짐을 싸야했다. 한 해에 몇 번씩 짐을 싸는 미술학원이 제대로 될 턱이 없었다. 딸이 조금 크면서 도시로 나갔다. 더 이상 학원을 하는 것 자체가 무리였다. 친한 선배가 전화를 했다. 선배의 입시학원에 강사로 나가게 되었다. 소문은 거기까지 따라왔다.

어느 곳에도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떠돌았다. 생활은 말이 아니었고 희망도 바닥이 났다. 그래도 딸은 무럭무럭 자랐고 제 아빠를 닮아 키도 훌쩍 크고 큰 눈에 윤곽이 선명했다. 딸을 보면서 떠나간 남자를 떠올렸다. 자신에게 미혼모라는 주홍글씨를 달아준 남자가 원망스럽지 않았다. 아니 날이 갈수록 보고싶고 기다려졌다. 함께 하던 시간이 생생하게 살아났다.

마음을 다잡고 공모전에 도전했다. 선배가 들뜬 목소리로 전화를 했다. 대상이라고 나보다 더 기뻐했다. 집으로 꽃다발과 케잌을 들고 찾아왔다. 상금은 많지 않았지만 부상으로 프랑스로 유학을 갈 수 있다는 말을 하며 기회를 놓치지 말라고 했다. 하는 수 없이 오년이 넘도록 소식을 끊었던 친정집을 찾아갔다.

아버지처럼 굳게 잠긴대문을 여는 것부터 무거웠다. 아버지는 얼굴도 마주치지 않으셨고 엄마는 눈물을 쏟으며 딸을 끌어 안았다. 딸에게는 미리 말을 해두었다. 엄마 올 때까지 할머니 할아버지 말씀 잘 듣고 밥 많이 먹고 아프지 말라고 몇 번을 얘기했다. 딸은 평소처럼 해맑은 얼굴로 뽀뽀를 하고 손을 흔들었다.

프랑스의 첫인상은 음습했다. 옷차림이 허술했던지 계속 떨었다. 학교에 가기전 랭귀지스쿨에 다녔다. 개강을 하면서 해가 뜨는지 지는지도 모르고 이젤 앞에 붙어있었다. 계절이 가는 것도 모르는 체 언제나 으슬으슬 떨며 웅크리고 집과 학교를 오고갔다. 귀국을 이틀 앞두고 있을 때 그 선배가 나타났다. 그리고 몇 육년을 살면서도 못 가본 베르사이유를 가고 파리에서 유명하다는 몽마르뜨를 갔다. 에펠탑과 세느강을 거닐었다. 아폴리네르의 시 미라보 다리가 생각났다.

미라보 다리 아래 세느강은 흐르고
우리들의 사랑도 흘러가네
내 마음 속 깊이 새기리라
기쁨은 언제나 고통 뒤에 오는 것을

밤이여 오라, 종이여 울려라
세월은 흐르고 나는 여기 그대로 있네...

여고시절에 곧잘 외우던 시가 더 이상 생각이 나지 않았다. 선배는 수시로 편지를 했지만 나는 한 번도 답장을 하지 않았다. 그래도 찾아 온 선배가 고맙기도 하고 미안했다. 에펠탑이 보이는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며 와인을 마셨다. 건배를 하고 선배가 내미는 상자에는 목걸이가 들어있었다. 등뒤로 와서 목걸이를 걸어주었다.

선배의 어깨에 기댄 채 잠이 들었던 것 같다. 잔잔하게 펼쳐진 바다가 보이고 나지막한 산과 논밭이 보이고 오밀조밀 모여있는 집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얼굴에 닿는 햇살이 손으로 감싸는 듯 따뜻했다. 눌려있던 어깨가 가벼워지고 있는 걸 느꼈다. 모든 게 그대로였다. 문을 열고 들어서며 엄마보다 딸을 불렀다. 아버지는 그대로 일어나서 밖으로 나가고 엄마는 부둥켜안은 채 눈물만 흘렸다.

딸의 물건도 사진도 보이지 않았다. 단짝친구가 외가에 놀러가는데 같이 가자고 해서 딸려 보냈는데 갑자기 쏟아진 폭우에 차와 함께 물살에 휩쓸렸다. 며칠만에 찾았을 때는 옷을 보고서야 손녀딸을 알아봤다. 연락을 하려고 하니 에미가 온다고 살아날 것도 아니고 공부하는 애 흔들지 말라는 아버지 말씀에 그렇게 하기로 했다고 하는 엄마의 말소리가 기적소리처럼 멀어지고 있었다.

선배는 거의 매일 찾아왔다. 세월이 약이 되었을까 아니면 선배의 정성과 엄마의 성화가 마음을 돌렸을까 계절이 바뀌면서 선배와 날을 잡았다. 식장을 잡고 신혼집을 계약하고 예물을 고르고 혼수를 준비하는 틈틈이 딸 생각이 났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대신 배안의 움직임으로 손이 갔다.

선배와 집 앞에서 헤어지며 내일부터는 절대 데려다 주지 않는다고 웃으면서 말했다. 내일이면 나는 이 남자의 아내가 된다. 더 이상 미혼모가 아닌 한 남자의 아내로 엄마가 된다고 생각하니 프랑스에서 추위로 떨던 생각이 났다. 이 남자와 있으면 언제나 따뜻하게 살 수 있다고 생각하며 골목을 빠져나가는 남자의 뒷모습을 보고 있었다.

신부대기실에 앉아 있으니 결혼을 한다는 실감이 났다. 엄마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딸을 바라보며 예쁘다고 하며 사진을 찍고 식장으로 갔다. 늦게 온 친구들이 요란하게 축하인사를 하고도 한 참 시간이 지났다. 남동생이 다급하게 뛰어들어오고 엄마의 울음소리가 뒤따라 들어왔다.

하얀 시트를 걷자 새신랑은 퉁퉁부은 얼굴로 차갑게 누워있었다. 평소처럼 이가 훤히 드러나게 웃으며 손부터 내밀지도 않았다. 웨딩드레스는 소복으로 바꾸어 입고 머리에는 화관대신 하얀 리본이 달려도 신랑은 시진 속에서 웃을 뿐이다. 빨간 명정 위로 꽃잎이 날아와 앉았다. 썰렁한 신혼집에 신랑 사진과 마주앉았다. 온몸이 떨렸다. 엉금엉금 기어 방으로 들어갔다.

찌르는 듯한 통증이 반복되었다. 달력을 보아도 며칠인지 알 수도 없었다. 병원 침대에서 눈을 뜨니 엄마 얼굴이 눈앞에 있었다. 배가 뭉치는 듯했다는 것 밖에 아무 느낌도 없었다. 엄마에게 전화를 한 것 까지만 생각났다. 다행이 아이는 무사하다고 하는 엄마의 얼굴엔 핏기라고 없었다.

예쁜 딸을 안으며 다시 미혼모가 되었다. 선배가 하던 입시학원을 정리했다. 집도 세를 주고 친정으로 갓난쟁이를 데리고 돌아갔다. 아이 돌이 될 무렵 모교에서 연락이 왔다. 강사자리가 났다고 했다. 은사님은 선배 얘기를 하며 열심히 하라고 했다. 시간이 가고 전임이 되고 교수가 되는 사이 딸도 대학생이 되었다. 딸은 세상 모든 일을 다 해낼 것처럼 열정이 넘쳤다.

이 학년이 끝날 무렵 딸이 사귀는 남자를 데리고 왔다. 인상도 서글서글하고 밉상이 아니었다. 신입생엠티에서 반짝반짝하는 새내기를 그냥 둘 수가 없어서 바로 찍었다는 넉살 좋은 녀석이 설지 않았다. 둘은 군대를 다녀오고 졸업을 하도록 붙어다녔다. 그렇게 붙어다니며 공부는 언제 했는지 외시에 합격을 했다. 바로 결혼을 하겠다고 했다. 남자 부모님께 인사를 다녀온 딸은 방으로 들어가 문을 걸어닫았다.

남자의 집은 아버지의 이름만 대면 알만한 집안이었다. 한 마디로 택도 없다는 식이었다. 아들을 곧바로 해외 영사관으로 보낼 정도로 단호했다. 딸은 밥을 먹지 못하고 밤이면 몰래 어둠속에서 군것질을 했다. 방에는 베어먹다 남은 사과나 이빨자국을 따라 갈변하고 토마토가 진물을 흘리고 있었다. 찰랑거리던 머리에는 윤기가 없었다. 가끔 낮에 거실에라도 나올 때면 초점을 잃은 눈이 몽유병 환자 같았다.

연구실로 전화가 왔다. 대학병원 응급실이라고 했다. 출산이 아직 두 달이나 남았다. 체중미달인 아기는 바로 인큐베이터에 들어갔다. 이마며 발에 바늘이 꽂히고 눈을 가리고 있었다. 그래도 외할머니를 아는지 거미 같은 손가락을 움직였다. 딸을 낳았을 때 생각이나며 눈물이 솟았다. 다른 생각을 할 필요가 없었다. 딸은 나처럼 살게 하고 싶지 않았다. 미혼모를 선택하는 사람은 없다. 그렇게 되었을 뿐이고 수긍했을 뿐이다.

우선 퇴원한 딸을 집으로 데리고 갔다. 미리 몸조리 시킬 사람도 구했다. 남들처럼 산후조리에 좋다는 것도 다 준비를 했다. 딸도 손녀딸도 서럽지 않게 살게 해주겠다고 마음먹었다. 매일 병원에 가서 손녀딸 면회를 했다. 하루 하루 눈에 띄게 자랐다. 병원에서 백일 잔치를 하고 퇴원을 했다. 덩그러니 휑하던 집이 꼬물거리는 어린 것 하나 들어오고 꽉 찼다. 온 집안이 따뜻하고 향기로웠다.

띨에게도 절대 주눅들지 말고 꿋꿋이 살라고 했다. 남들이 미혼모라고 손가락질을 하든말든 하루하루가 즐거웠다. 아기 이름을 무어라고 지을까 남의 이름도 유심히 보고 옥편도 찾아보고 해서 예쁠 아(娥)에 배 리(梨)자를 써서 아리라고 지었다. 아리야 하면 까만 눈을 반짝였다.
조그만 입을 오므리며 옹알이를 하면 하루 해가 어떻게 가는 줄 몰랐다. 분홍 잇몸에서 하얀 이가 돋아나고 어느 새 걸음마를 떼었다.

실용미술을 전공한 딸은 그래픽디자인에 관심을 보였다. 한동안 학원을 다니는 것 같더니 바로 취업이 되었다. 딸도 생기를 되찾아갔다. 아리 손을 잡고 길에 나서면 보는 사람마다 예쁘다고 했다. 놀이터에라도 가면 몇 살 더 먹은 아이들이 다가와서 예쁘다고 같이 놀자고 했다. 하루 하루가 꿈만 같았다.

다른 날보다 늦어진 딸이 어두운 얼굴로 입을 열었다. 아리 생부 집에서 찾아와서 아리를 데려가겠다고 했다는 얘기다. 말이 안 된다고 펄쩍 뛰었다. 핏줄에서부터 친권을 들먹이며 소송을 하겠다고 했다. 알고보니 새로 만나 결혼한 여자가 불임판정을 받았다고했다. 절대 안 된다고 했지만 세상은 힘 있는 사람의 편이었다.

아리의 짐은 하나도 가져가지 않았다. 딸은 며칠을 울었다. 물 한 모금 넘기지 못하던 딸은 결국 병원으로 실려갔다. 언제 사 모았는지 수면제와 신경안정제를 삼켰다. 위세척을 하고 깨어나지 못한 딸은 가늘게 신음소리를 내며 떨었다. 이불을 포개서 덮어주고 가슴을 눌러주어도 계속 떨었다. 생각다 못해 좁은 침대에 누워 품고 잠이 들었다.

딸은 가방을 챙겨 며칠 머리 식히고 온다며 집을 나섰다. 오랜만에 벽에 걸린 남편의 사진을 보았다. 여전히 그는 웃고 있었다. 맥주를 한 잔 마시고 물었다. 나를 언제까지 여기에 버려 둘 거냐고, 언제 데려갈 거냐고 해도 웃기만 하고 대답이 없었다. 그러지 말고 대답 좀 하라고 해도 소용이 없었다.

유리창으로 들어온 해에 얼굴이 따가왔다. 지금이 몇 시인지도 모르겠다. 주섬주섬 술병을 치우고 밖을 내다보니 날씨가 너무 좋았다. 이렇게 화창한 날엔 아리를 데리고 미끄럼을 태우고 싶었다. 거울을 보고 거울을 보고 머리를 대충 손으로 만지고 아리를 안고 놀이터로 갔다.

미끄럼틀엔 햇볕이 가득했다. 부지런히 계단을 올라가 주르륵 미끄러져 내려왔다. 아리의 웃음소리와 손뼉치는 소리가 들린다. 우리 예쁜 아리가 좋으면 할머니는 뭐든지 다 좋지, 저절로 함박 웃음이 나왔다. 아리의 웃음소리가 아슴아슴 멀어져갔다.

사이렌 소리가 들리고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이 할머니 벌써 몇 번째 인형을 안고 미끄럼을 타다 떨어졌어요.”
“혼자 사시는 할머닌데 계속 이러시다 큰일나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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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슬픈 이야기네요. 한국에서 여성은 약자에요. 미혼모들이 자립해서 세상에 당당해질 수 있는 장치가 강화되어야겠어요.

한 순간 지나가는 슬픈 꿈이었으면 좋겠네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