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작가 응모작- 단편] 난 실리콘을 꾸준히 먹고 있어.

in SteemZzang •  5 months ago 

그녀의 얼굴은 갓 삶아 껍질 벗긴 계란처럼 탱글탱글 하고 윤기가 반들거렸다. 흔히 말하는 도자기 피부였다. 몇 해전 서울로 가기 전보다 나이가 어려보였다. 목소리에서도 탄력이 넘쳤고 워낙 멋쟁이기는 했지만 악세사리나 옷차림이 눈에 띄게 달라졌다.

그전에는 거의 매일 붙어다니다시피 하던 친구가 결혼한 딸의 임신바라지를 하게 되면서 왕래가 뜸했다. 그리고 딸이 해산을 하고 산후조리원을 나오면서 외손녀를 기르게 되었다. 주말이면 딸과 사위가 다녀갔는데 갓난쟁이 기르는 것만해도 하루 해가 어떻게 가는지 모를판인데 백년손님이라는 사위가 매주 온다는 것도 보통 일은 아니었다.

요즘 세상에 사위가 아들보다 편하다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아무래도 거슬렸다. 아이가 탈이나도 온 신경이 가고 남편과 번갈아 안고 흔들며 밤을 새우기 일쑤였다. 그런 정성을 아는지 모르는지 딸은 드나드는 게 힘들다고 집에만 늘어져서 주는 밥도 제대로 못 먹었다. 그러면서 김치에 반찬 몇가지 만들어주면 싸가지고 가면서도 드나들기 힘들다고 어린 아이처럼 칭얼거렸다.

외손녀 자라는 모양이야 세상에 둘도 없이 귀하고 예쁘지만 두 내외가 다 힘에 부쳤다. 예전에 자식 기를 때는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지만 외손녀 기르는 일이 나가서 일하는 것보다 힘들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무슨 대책이 필요했다. 딸은 올 때마다 더 힘들다고 못해먹겠다고 징징거리고 사위도 말로는 고맙다고하면서도 힘든 얼굴이 역력했다.

딸 내외를 보내고 두 내외가 앉아 의논을 했다. 애들이 힘들어 하는 것도 이해가 갔다. 한 주일 내내 새벽에 나가 밤중에 들오는 생활이 휴일이면 늦잠이라도 자야하는데 매주 장거리를 오르내리는 일이 만만치는 않을 것이었다.

주말이 되기 전에 전화를 했다. 주말이면 우리가 아이를 데리고 갈테니 내려오지 말라고 했다. 바로 다음날 짐을 꾸렸다. 옷에 기저귀에 우유병에 분유통에 콩알만한 갓난쟁이 짐이 이삿짐처럼 거창했다. 딸네 반찬까지 챙기고 나니 이삿짐 차를 불러야 할 것 같은 생각도 들었다.

몇 번을 그렇게 딸네 집으로 아기를 데리고 다니다보니 이것도 할 짓이아니었다. 차에 시달리다보니 아기는 제때 기저귀를 못 갈아주어서 그런지 칭얼거리고 잠자리가 편치 않아서 그런지 자주 깨서 울었다. 아침먹고 바로 일어나서 출발해도 집에 도착하면 저녁때가 다 되었다. 집에 오면 아기 기저귀부터 살피고 서로 화장실을 먼저 가겠다고 할 정도로 피곤했고 저녁은 먹을 것을 두고도 짜장면 배달을 시켜 먹고 아이를 끼고 잠이들었다.

남편이 먼저 말을 꺼냈다. 이젠 나이가 들어 그런지 장거리 운전이 피곤하다고 했다. 시력도 전같지 않고 매주 꼬박꼬박 다니는 일이 짐이 된다고 알고는 있었지만 생각 이상으로 힘들어했다. 다시 생각을 해보자고 했다. 한 주씩 번갈아 오가면 어떨까 생각도 했지만 기왕 딸네를 도와주기로 했으니 조금이라도 편하게 해 주려면 그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괜히 서울집을 처분하고 귀촌을 했다는 후회가 밀려왔지만 소용이 없었다. 생각에 생각을 거듭한 끝에 결론을 냈다. 아기가 어린이 집에 들어갈 때까지 기러기부부가 되기로 했다. 딸네 집에가서 아기도 보고 살림도 봐주면서 지냈다. 그리고 남편이 가끔 오르내리고 한번씩 집에 내려가 살림을 봐주기로 했다.

그러나 남편은 영상통화를 하면서도 사흘돌이로 외손녀가 보고싶다고 했다. 결국 전원생활을 꿈꾸며 지은 집을 처분하고 다시 도시로 돌아왔다. 전세를 구하기로 했는데 딸네집과 같은 동에 집이났다. 바로 계약을 하고 서둘러 이사를 했다.

더 이상 기러기부부로 살지 않아도 되었고 딸과 사위도 살림걱정 육아걱정에서 해방되었다. 외손녀가 자라 어린이 집에 가면서 바로 동생을 보게 되었다. 부부는 오직 외손녀 뒷바라지에 헌신했다. 사위는 그런 장인장모를 친부모 이상으로 따랐다. 아들이 있어도 그보다 더 잘 할 수는 없었다. 출퇴근 때마다 들러가고 틈틈이 장인 친구가 되어 주었다. 때때로 장모 선물도 잊지 않는 센스도 보여주었다.

외손녀 둘을 기른 상은 크나큰 기쁨으로 돌아왔다. 장인장모님 덕분에 회사에서도 잘 풀리고 동기들보다 빨리 승진했다고 해외여행도 보내드렸다. 딸은 엄마 아버지 건강하게 지내시도록 철철이 보약에 몸에 좋다는 것은 다 챙겼다. 이제 두 부부에게도 조금씩 시간이 주어졌다. 그리고 잠시 접어두었던 전원생활의 꿈이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봄꽃이 만개하면서 먼저 살던 동네로 바람 쐬러 왔다가 우연히 부동산을 지나게 되었다. 마침 중개사도 그대로 있었고 부부를 알아보고 먼저 아는체를 했다. 서로 안부를 묻고 지난 번에 처분했던 집이 매물로 나왔다는 얘기를 비쳤다. 더 망설일 것도 없이 구두 계약을 하고 딸과 상의를 했더니 딸도 좋다고 했다.

꽃이 지기 전에 외손녀들에게 봄나들이 시켜주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살고 있던 사람들도 급하게 이사를 해야했고 부부도 바로 수리를 하고 이사를 했다. 손녀들은 마당에만 나가도 매일 소풍간다고 좋아했다. 어린이 집에 가서도 할머니집 그림을 그리고 친구들에게 자랑을 한다고 했다.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온 느낌이었다. 문화센터에 다니며 하고 싶던 규방공예도 배우고 외손녀들을 위해 베이커리 과정에도 등록했다. 가끔 꽃차 동아리 회원들과 꽃을 따러 다니면 소녀시절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나이를 거꾸로 먹는다는 게 이런 말이구나 실감하며 하루하루가 행복했다. 건망증이나 알츠하이머 같은 것도 나를 피해 갈 거라고 생각했다.

친구 생각이 났다. 마트에 들러 장을 보는데 누가 팔을 툭쳤다. 그 친구였다. 둘은 카트를 한 손으로 잡은 채 이게 얼마만니야며 서로를 툭툭 치다 뒷 사람이 비켜 달라는 말에 아차하고 서둘러 장을 보고 차에 싫은 다음 커피숍으로 갔다. 그간의 얘기를 하면서 한참 수다를 떨다 친구가 물었다.

“어쩜 나이를 거꾸로 먹니? 몸매도 군살 하나 없고, 얼굴에 뭐 한거니?”
그래 기다리고 있었지, 오랜만에 나를 봤으면 당연히 물어봐야지 하고 속으로 말하며 궁금증을 부추겼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대답을했다.

“응, 나 몇 년째 하루도 빼놓지 않고 실리콘을 먹고 있어.
우리 사위가 해외에서 직구로 사주고 있거든...”

그녀의 자신있는 표정에 이상하기는 해도 더 이상 물을 수가 없었다. 집에 오자마자 확인을 했다. 분명 병에 콜라겐이라고 또렷하게 씌어 있었다. 픽픽 웃음이 나왔다. 얼굴은 포장지에 불과했다. 무슨 짓을 해도 나이는 속일 수 없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실감했다.

거울 앞으로 가서 적당히 늙어가는 자신의 얼굴을 보며 수고했다고말했다. 눈가의 주름이 웃으며 고맙다고 대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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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에 대한 사랑
순주에 대란 사랑
그 사랑이 그저 위대하기만 합니다!

부모님의 노고를 간략하면서도 깊이있게 잘 묘사하셨어요.

나이 들면서
어느 정도의 건망증은 인격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더 나빠지지 않도록 조심 할 필요는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