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 운명의 o.k

in SteemZzang •  6 months ago  (edited)

지금도 동족상잔의 비극으로 지칭되는 6.25가 한참 포화를 쏟던 때였다.
전쟁은 모든 사람에게 가혹하지만 특히 힘이 없는 노약자나 여성에게 더 잔인했다.

이미 역사 속에서 여성들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는 치욕과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 일제 강점기에도 예외는 아니어서 딸이 있는 집에서는 미처 혼기에 닿지 않은 딸도 결혼을 시키려고 서둘렀다. 시골이라고 해도 다를 것은 없었다.

그 날도 어린 신부는 족두리를 쓰고 아무 말도 못하고 그림처럼 앉아있었다. 마을 청년들은 비록 전쟁통이지만 그래도 잔치 기분을 내고 있었다. 신랑의 발목을 묶어 대들보에 매달았다. 대롱대롱 매달린 신랑을 힘센 장정이 어깨에 메고 다른 사람이 다듬이 방망이를 들고 발바닥을 때리며 술이며 안주를 내놓으라고 장난기 어린 얼굴로 소리를 지르고 매를 맞는 사위는 일부러 죽는 소리로 비명을 지르며 장모님으 불렀다. 그러면 장모님이 떡 벌어지게 한 상 차려 내게 되어있었다.

원래는 신랑 달아먹기는 신부 오빠뻘 되는 집안 사람들이 하는 동상례(同床禮)라고도 했다. 눈에 넣아도 안 아픈 귀하고 예쁜 동생을 보내니 아끼고 사랑해 달라는 부탁인 동시에 함부로 해서 내 동생 눈에 눈물 흘리게 하면 이렇게 혼 날 줄 알라는 엄포였고 술 한 잔 나누면서 결혼식을 마무리 하는 놀이였다.

그런데 대문께에서 두런 거리는 소리가 나고 이어 처음 보는 서양인들이 들어왔다. 군복차림에 총을 멘 군인들이었다. 말로만 듣던 양코배기들이 닥친 것이었다. 마당 가운데 떡 버티고 서서 보더니 영어로 무어라고 한참 했다. 장정들은 신랑을 대들보에 매달아 둔 채 양코배기 얼굴만 쳐다 보고 있었다. 그러나 그 시골에 영어를 알아 들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래도 읍내에서 중학교를 다닌 한 청년이 있어 그를 내세웠다. 다시 양코배기기 뭐라고 하자
그 청년이 목소리를 가다듬고 한 마디 했다.
“예스!”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그에게 박수를 보냈고 그는 우쭐했다.
또다시 양코배기가 몇 마디를 했다.
이번엔 더 고개를 빼면서 대답을 했다.
“오우 케이~~~”
고막을 찢는 총소리가 나고 대들보에 매달려 있던 신랑은 피를 쏟으며 그대로 숨이 끊어졌다.
웅성거리는 사람들 틈으로 한국인 통역관이 들이닥쳐 자초지종을 물었다. 양코배기의 설명을 들은 통역관이 그 자리에서 벌벌 떨고 있는 사람들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연합군이 도주한 인민군을 색출하려고 수색중이었는데 여기 있는 남자들이 한 사람을 거꾸로 묶어놓고 몽둥이로 두드려 패기에 빨갱이냐고 물었다. 그들중 대표로 보이는 사람이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래서 그렇게 때려서 죽일 것 없이 내가 총으로 쏘아서 죽여도 되겠느냐고 했다. 좀 전의 그 대표가 동의를 했고 그렇게 했다고 했다.

사람들은 영어로 대답을 한 사람에게 물었다. 그는 책만 보면 졸려워 수업시간에 잠만 잤고 특히 영어 시간은 혀꼬부랑 소리를 듣기만 해도 골치가 아파 거의 빼먹어 할 줄 아는 말이 오케이와 예스 노깟뎀 세 가지 밖에 없다고 했다. 모두들 기가막혔지만 죽은 신랑이 살아날 방법은 찾지 못했다.

왁자지껄한 소리를 들으며 결혼식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던 어린 신부는 족두리도 벗지 못한 채 청상과부가 되었다.

누구나 세상 모든 지식을 다 지니고 있을 수는 없다. 따라서 모르는 것은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모르면서 아는 체를 하는 게 부끄러운 일이다. 만약에 이 사람이 자기가 영어를 모르면 모른다고 하면 될 일이었다. 단순히 아는 체를 한 것에 불과했던 일이 한 사람의 생명을 앗아 갔고 한 사람의 인생이 비틀어 놓는 비극을 낳았다.

오늘이 574돌 한글날이다. 우리에게 한글이 있음은 너무도 자랑스럽고 복된 일이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경제발전이나 세계로 뻗어나가는 한류문화도 모두 한글이 있어 가능한 일이다.
한글을 사랑하고 바른 말 고운 말을 사용해야 함은 두말 할 나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방송용어나 일부 공공기관에서 사용하는 공문서에 외래어 사용이 위험수위를 넘고 있음이 개탄할 일이다.

한글을 창제하고 반포하신 세종대왕께 대한 존경과 감사는 물론 우리 말 우리 글을 지키기 위해 애쓰신 국어 학자들이나 연구단체가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되며 우리 생활 속에서도 비속어나 지나친 외래어 사용을 줄이며 바르고 고운 우리말과 우리글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을 갖도록하며 고유의 문자를 지닌 문화민족이라는 자긍심을 지니고 보다 품격있는 언어생활을 하도록 해야겠다.


이미지: 네이버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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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래서 선무당이 사람잡는다는 말이 나온 거군요.

선무당 치고도 너무 심했습니다.
그 어린 신부는 생과부가 되어 어떻게 살겠어요.ㅠㅠ

참!! 이게 실화면 정말 황당하군요

품격있는 언어생활 음~~~ 제가 화가나면 많이 품격이 떨어지는데.. 이부분은 고쳐야 겠네요

잘 읽었습니다.

  ·  6 months ago (edited)

직접 뵙지는 못했지만
이미 품격을 갖추고 계신 분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글은 실화를 바탕으로 엮었습니다.
오래 전에 우리 동네로 이사온 어느 분이 말씀하신
불행한 근대사의 한 단면입니다.

  ·  6 months ago (edited)

"누구나 세상 모든 지식을 다 지니고 있을 수는 없다. 따라서 모르는 것은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모르면서 아는 체를 하는 게 부끄러운 일이다."

옳은 이야기 입니다.

단편이 주는 맛이 가득합니다.
깜짝 이벤트를 빛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한글날 생각나는 얘기를 엮어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