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일기] 수레바퀴 아래서 - 헤르만 헤세

in engrave •  last month  (edited)

자신을 짖누르는 가정과 학교의 종교적 전통, 고루하고 위선적인 권위에 맞서 싸우는 어린 소년을 주인공으로 한 작가의 자서전. 주인공 한스 기벤라트는 헤세의 분신일 뿐만 아니라 오늘을 사는 우리 젊은이들의 자화상이다.

"이 책에는 내가 실제로 경험하고 괴로워했던 삶의 한 조각이 담겨 있다." ___헤르만 헤세




몇 달전에 감명깊게 읽었던 ⟪데미안⟫ 덕분에, 헤르만 헤세 작가의 소설을 하나씩 다시 읽고 있습니다. 헤르만 헤세의 소설은 주인공 내면의 갈등과 고뇌를 표현하는 심리 묘사가 매우 뛰어나다고 생각합니다.

⟪수레바퀴 아래서⟫는 헤르만 헤세의 자전 소설로 유명합니다. 자전 소설들의 대부분은 젊은 날의 고뇌와 방황, 사랑과 우정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수레바퀴 아래서⟫도 바로 이런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소설 속에 나오는 인물 중에서 주인공 「한스 기벤라트」와 그의 친구 「헤르만 하일러」는 헤르만 헤세 바로 자신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소설 속 인물들이 겪었던 삶과 헤르만 헤세의 삶이 매우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헤르만 헤세 내면의 대립되는 두 자아를 소설 속에서 두 인물로 나누어 표현한게 아닐까 생각됩니다.

⟪수레바퀴 아래서⟫는 19세기 말 독일 ‘빌헬름 제국 시대’의 교육 체계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19세기 말 독일에서는 청소년의 자살이 크게 증가했습니다. 그래서 헤르만 헤세는 이 교육 체계에 대한 문제점을 비판하기 위해 소설을 썼다고 합니다.

소설은 모두 7장으로 되어 있습니다. 간략하게 줄거리를 초중반으로 정리했습니다. 참고로 인용문 뒤에 페이지 번호는 출판사 ⟪민음사⟫ 기준입니다.




초반

주인공 한스는 독일 시골마을에서 가장 재능있는 학생이다. 그 마을에서는 똑똑한 학생이 가야할 길은 하나 뿐이다. 주(州) 정부 시험에 합격하여 신학교와 튀빙겐 신학 대학을 졸업하고 목사나 교수가 되는 것이다. 한스는 이 시험을 치르기 위해서 학교 교장에게 그리스어를 배웠고, 오후에는 마을 목사에게 라틴어와 종교 과목의 보충 수업을 받았다. 그리고 일주일에 두 번은 한시간 동아 수학 교사의 지도를 받았다. 한스는 시험을 위해서 자신이 좋아하던 토끼 키우기, 낚시 등을 모두 포기했다. 그리고 피곤과 졸음, 그리고 두통과 싸워가며 매일 주 시험 준비에만 매진했다.

"시험에 합격하게 되면, 원하는 건 뭐든지 내게 말해도 좋다" 아버지는 유쾌한 기분으로 말했다.
"아녜요. 다 틀렸어요" 한스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전 분명히 떨어졌을 거예요"
"바보 같은 소리 좀 그만 해라. 어째서 그러니! 내 마음이 변하기 전에 어서 원하는 걸 말하는게 좋을 거야"
"방학 때 다시 낚시하러 가고 싶어요. 허락하시는 거죠?"
"그래. 좋아. 네가 시험에 합격하기만 하면"
(p. 41)


한스는 주 시험에 2등으로 합격한다. 학교 교장과 아버지는 한스를 매우 자랑스러워 했다. 그리고 시험에 합격한 한스는 방학 동안 자신이 좋아하는 낚시를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매우 즐거워한다.

한스는 발그레해진 얼굴로 눈을 반짝이며 신이 나서 낚싯대를 다듬었다. 그 일은 낚시하는 것만큼이나 그가 좋아하는 일이었다. 오후부터 저녁때까지 그는 내내 그 일에 매달렸다. (...) 이제 한스는 7주나 되는 긴 긴 방학을 지루하지 않게 보낼 수 있을 거라 확신했다. 낚싯대만 있으면 하루 종일 강가에 앉아 즐겁게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p. 47)


시험에 합격하고 난 후 보내는 여름방학은 한스에게는 가장 안정적이고 달콤한 시간이었다. 한스의 여름방학을 잘 묘사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문장을 몇개 발췌했다.

여름 방학은 이래야 한다! 산 위에는 용담(龍膽) 처럼 푸른 하늘이 펼쳐지고 눈부시게 빛나는 무더운 날들이 몇 주일이나 계속 되었다. 이따금 세찬 폭풍우가 갑작스럽게 몰아칠 뿐이다. 강물은 사암(砂岩) 바위들과 잣나무 숲의 그늘, 그리고 좁은 골짜기 사이로 흐르고 있었다. 하지만 무척이나 따뜻했기 때문에, 저녁 늦게라도 물에 들어갈 수가 있었다. 마른 풀과 베어놓은 풀의 내음이 마을을 휘감고 퍼져나갔다. 밀밭의 좁다란 두렁은 누렇게 금빛이 도는 갈색으로 변해 있었다. (p. 48)

한스는 철둑 위에서 멈추어 섰다. 둥근 양철통을 바지 주머니에서 끄집어내어 부지런히 메뚜기를 잡기 시작했다. 기차가 스쳐 지나갔다. 철길이 무척이나 가파르게 뻗어 있었기 때문에, 기차는 느긋한 속도로 천천히 움직였다. 기차는 흥겹게 나부끼는 깃발처럼 연기와 증기를 길게 내뿜으며 달리고 있었다. 빙빙 돌며 피어오르는 하얀 연기는 어느덧 햇살이 가득한 이른 차미의 맑은 하늘로 사라져갔다. 이 모든 풍경이 얼마나 오랜만이던가! 한스는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마치 잃어버린 아름다운 시간을 이제 갑절로 다시 찾으려는 듯이. 그리고 전혀 거리낌이나 두려움 없이 다시 한 번 어린 시절의 세계로 되돌아가려는 듯이. (p. 50)

그리스어와 라틴어, 문법과 문체론, 산수와 암기, 그리고 오랫동안 쉬지도 못한 채 쫓기는 듯이 살아온 1년이라는 세월. 이 모든 괴로운 방황도 졸음에 잠긴 따스한 한나절 속으로 조용히 잠겨버렸다. (...) 이제 다시 예전처럼 강가에 앉은 한스는 둑에서 흘러내리는 하이얀 물거품이 물보라가 되어 흩날리는 광경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눈을 깜박거리며 드리운 낚싯줄을 지켜보았다. 그의 곁에서는 낚아올린 물고기들이 주전자 안에서 헤엄치고 있었다. 정말이지 무척 멋진 일이었다. (p. 54)


하지만 신학교에 입학하기 전 여름 방학을 신나게 즐기려던 한스의 꿈은 물건너 갔다. 교회 목사와 교장 선생을 비롯한 학교 교사들의 기대와 명예욕, 그리고 한스 자신의 야망 때문에 방학 동안에 즐기려던 낚시를 그만둔다. 교사들은 방학 때도 계속 공부하기를 요구했고, 신학교에서 배우게 될 과목에 대해서 선행학습하라고 압박한다. 이렇게 아버지와 교사들은 한스가 즐겁게 놀수 있는 유년시절을 빼앗가버렸다.


한스는 여름방학 동안 자신이 좋아하는 취미 생활을 포기하고 두통과 싸워가며 신학교에서 앞으로 배우게 될 과목을 공부한다. 성적 위주의 치열한 입시 경쟁 하에 있는 우리나라 청소년들에게 너무나 익숙한 광경이다.

찌는 듯이 무더운 오후 시간에 수영장 대신에 수학 교사의 후텁지근한 방을 찾아갔다. 거기에 틀어박혀 모기가 윙윙거리는 먼지투성이의 공기를 마시며 피곤한 머리를 부둥켜안은 채 텁텁한 목소리로 "에이 플러스 비, 에이 마이너브 비"를 중얼대야 하는 현실이 가혹스럽게 느껴졌다. 기분이 좋지 않은 날에는 무기력하고 갑갑한 분위기가 암울한 절망감으로 바뀌는 것이었다. (p. 76)

어느새 한스는 또다시 숙제 더미에 깔려 있었다. 어느때는 밤 늦게까지 책상에 앉아 이를 악물며 과제를 풀었다. 아버지 기벤라트는 열심히 공부하는 아들을 자랑스럽게 지켜보았다. 자신들의 줄기에서 뻗어난 가지가 자신들이 막연하게 존경해 마지 않던 높은 영역에까지 치솟기를 바라는 속인들의 이상이 아버지의 우둔한 머릿속에서도 어렴풋이 살아 숨쉬고 있었다. (p. 77)


여름 방학이 끝나고 그동안 교사들이 시키던 대로 공부만 했던 한스는 무척 야위었다. 그리고 그는 고향과 부모님의 집을 떠나 마울브론 신학교로 떠나게 된다.




중반

마울브론 신학교에서 유독 친구를 사귀지 못했던 두 친구, 한스 기벤라트와 헤르만 하일너는 서로에게 친밀함을 느끼고 친구가 된다. 하일너는 한스가 가지지 못했던 욕망을 거침없이 실현하는 존재이다. 하일너는 한스에게 매혹적이면서도 위험한 친구였다.

성격이 그리 복잡하지 않으면서도 눈에 띄는 인물은 슈바르츠발트에서 온 헤르만 하일너였다. 그는 훌륭한 가문에서 자란 아이였다. 벌써 첫날부터 주위에서 그가 문예 애호가이자 시인이라는 추측이 무성했다. 또한 주 시험에서 그가 육각운(六脚韻)으로 글을 썼다는 소문이 쫙 퍼져있었다. 그는 말하기를 즐기고, 활기가 넘쳤으며, 멋진 바이올린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겉으로 드러나는 자신의 외양을 일부러 부각시키기 위하여 남다른 노력을 기울니는 것 같았다. 이러한 성향은 아직 성숙되지 못한 젊은이들의 경솔한 느낌들이 서로 불확실하게 뒤섞여 나타나게 되는 혼합물과 같았다. 하지만 그의 몸과 마음은 자신의 나이에 걸맞지 않게 성장해 있었다. 그는 벌써 나름대로 시행착오를 거치며 자기 길을 가기 시작했다. (p. 95)


하일너는 자기 나름대로의 사고와 언어를 가지고 있었으며, 남들보다 더 열정적이고 자유로운 생활을 누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남다른 고민으로 괴로워 했으며, 자기 주변을 둘러싼 환경을 경멸에 찬 눈초리로 쳐다보았다. 어느날 하일너는 다른 학우와 싸움을 하게 되고 눈물을 보이며 치욕스러운 일을 당하게 된다. 이날 저녁 하일너는 차갑고 어두운 침실이 창턱에 앉아 꼼짝도 않고 회랑을 내려다본다. 한스는 그런 하일너의 뒷모습을 보고 측은하게 여겨 다가간다. 그리고 그 둘은 키스를 한다. 이것은 한스 자신의 숨겨진 욕망에 키스하는 장면이다.

두 소년은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았다. 아마 이 순간에 처음으로 상대방의 얼굴을 진지하게 바라본 것 같았다. 젊음이 넘치는 매끄러운 생김새 뒤에 깃들여 있을지도 모를, 특유의 성향을 지닌 남다른 인간적인 생명과 나름대로의 특징적인 영혼을 마음속에 그려보았다.
헤르만 하일너는 천천히 팔을 펴 한스의 어깨를 붙들었다. 그러고는 서로의 얼굴이 거의 닿을 만큼 한스를 끌어 당겼다. 한스는 갑자기 상대방의 입술이 자기의 입술에 닿는 느낌 때문에 소스라쳐 놀라고 말았다.
한스의 심장은 이제까지 느껴보지 못한 야릇한 감정을 이겨내지 못하고,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하일너와 어두운 침실에 함께 있다는 것, 그리고 갑자기 서로 입맞춤을 나눈다는 것은 한스의 모험심을 충족시켜 주면서도 새롭고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만일 누군가에게 들키기라도 한다면, 그야말로 끔찍스러운 꼴을 당하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에게는 두 소년의 입맞춤이 방금 전에 하일너가 흘렸던 눈물보다 훨씬 더 우스꽝스럽고 치욕스럽게 여겨질 것이기 틀림없기 때문이었다. 한스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단지 피가 머리 위로 솟구쳐 오르는 듯한 느낌을 받았을 뿐이다. 한스는 당장이라도 자리를 박차고, 도망치고 싶은 충동에 사로 잡혔다. (p.112 ~ 113)


어느 추운 겨울날 한스와 같은 방에 거처하고 있던 힌딩어가 연못에 빠져 익사하는 사고가 발생한다. 그날 오후 늦게서야 사람들은 힌딩어가 없어진 사실을 알아차린다.

마침내 뻣뻣하게 굳어버린 소년의 자그마한 시체가 발견되어 눈 덮인 갈대 숲에서 들것에 실렸을 때에는 이미 어둠이 짙게 깔린 뒤였다. 신학교 학생들은 놀란 새처럼 불안에 떨며 시체의 주위에 몰려들었다. 그리고 두 눈을 크게 뜨고 시체를 쳐다보며 파랗게 곱은 손가락을 문지르고 있었다. (p.133)


한스는 이 날 첫 죽음을 경험했다. 그날부터 몇일동안 신학교 내에는 적막적인 분위기가 감돌았다. 학생들의 모든 행위와 언어가 부드러워졌고, 이 기간에는 싸움이나 노여움, 야단법석이나 웃음 모두 자취를 감추었다.

모범 소년 한스는 가슴이 저리는 듯한 슬픔과 부끄러움을 느꼈다. 얼어붙은 들판길을 걸어 비틀거리며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추위에 새파래진 뺨을 타고 하염없이 쏟아져내리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그는 잊을 수도 없고, 또 후회해도 돌이킬 수 없는 죄악과 태만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재단사의 아들 힌딩어가 아닌, 바로 자신의 친구 하일너가 맨 앞에서 높이 들린 들것 위에 실려가는 것처럼 여겨졌다. 마치 한스의 배신에 대한 고통과 분노를 한몸에 지고 또 다른 세계로 떠나가듯이. 성적이나 시험이나 성공의 의해서가 아니라, 양심의 순결이나 오욕에 의하여 인간이 평가되는 그러한 세계로. (p.134)


죽음을 경험한 이후 한스는 더욱 성숙해졌다. 그리고 하일너와의 우정은 더 깊어졌고 일상은 더 즐거워졌다. 하지만 학교 생활은 갈수록 한스에게 점점 더 낯설게만 여겨졌다. 그리고 지금까지 모범생이었던 한스가 하일너의 영향으로 점점 문제 학생으로 변해하는 모습을 보고 교사들은 모두 그를 안타까워했다.

조숙한 두 소년은 그들의 우정 속에서 가슴 벅찬 수줍음을 지닌 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첫사랑의 달콤한 비밀을 다른 학우들에 앞서 맛본 것이다. 더욱이 이들의 ⟨동맹⟩은 성숙해 가는 남성다움의 거친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 또한 다른 학우들에 대한 반항심을 양념처럼 간직하고 있었다. 이들은 하일너를 꺼리고, 한스를 이해하지 못했다. 이들의 숱한 우정은 아직도 순박한 소년의 소꿉장난에 지나지 않았다. (p. 141)


학교 선생들은 두 젊은 소년들의 행위를 위험하다고 여기고 이들에게 사랑을 베푸는 대신에 오랫동안 유지되어 온 학교 규칙에 따라 곱절이나 엄하게 다스렸다. 하지만 한스를 자랑스럽게 여겨온 교장 선생만이 그를 구제하기 위해 대화를 시도 했다. 교장 선생과의 대화에서 소설 제목이 왜 ⟪수레바퀴 아래서⟫ 인지에 대한 이유가 나온다.

"자네 앞으로 열시히 공부하겠다고 나한테 약속해 주겠나?"
한스는 교장 선생이 내민 오른손에 자신의 손을 얹어놓았다. 교장 선생은 그를 엄숙하면서도 부드러운 눈길로 쳐다보았다.
"그럼, 그래야지. 아무튼 지치지 않도록 해야 하네. 그렇지 않으면 수레바퀴 아래 깔리게 될지도 모르니까"
(p .146)


어느 날 학교생활에 싫증 난 하일너가 학교를 탈주하는 말썽을 부려 강제 퇴학을 당하게 된다. 하일너가 떠나간 후, 한스는 학교생활에서 아무런 의미를 찾지 못한다. 그리고 한스의 성적과 그에 대한 교사들의 평판은 점점 떨어졌다. 결국 한스는 건강이 점점 악화되고 극심한 신경쇠약증에 걸린다.

그 다음날, 수학 선생은 벽에 걸려 있는 칠판에 기하 도형을 그리고 나서 이 도형을 증명하도록 한스를 호명했다. 한스는 그만 칠판 앞에서 현기증을 일으키고 말았다. 백묵과 잣대를 들고 아무렇게나 칠판 위를 휘갈려 쓰다가 필기 도구를 떨어뜨렸다. 그것을 주우려고 몸을 굽혀 바닥에 무릎을 꿇고는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다. (...) 마을 의사는 한스가 즉시 요양을 위해 휴가를 떠나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제는 신경전문의와의 상담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조심스럽게 내놓았다.
"저 아이는 분명 무도병에 걸리고 말 거예요" 마을 의사는 교장 선생에게 귓속말로 이야기했다. 고개를 끄덕이던 교장 선생은 무자비하리만치 화난 표정을 아버지처럼 자상하고 동정어린 표정으로 바꾸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교장 선생에게는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오히려 잘 어울리기조차 했다. (p. 173 ~ 174)


한스의 건강을 걱정한 의사와 교장 선생은 그를 고향 집으로 돌려보내기로 결정한다. 하지만 교장 선생은 한스가 학교를 떠나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결국 한스는 고향으로 돌아와 살게 된다. 그는 공부와 우정 두가지 목표를 잃어버렸다. 그리고 즐겁지 않은 유년시절을 가진 그는 하루하루 흘러가는 세월을 그저 멍하니 바라보며 보낸다.




후반

가을이 깊어지고 한스의 삶의 의욕도 점점 사라져갈 무렵 그에게 구원의 손길이 다가왔다. 그가 3년전 무척 좋아했던 엠마가 고향에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리고 한스는 플라이크 씨의 과즙 짜는 일터에 구경갔다가 우연히 엠마을 보게된다.

그녀는 열여덟이나 열아홉쯤 되어보였다. 여느 저지대 출신처럼 몸놀림도 가볍고, 성격도 쾌할해 보였다. 키는 그다지 크지 않았지만, 풍만하고 균형잡힌 몸매였다. 동그란 얼굴에 검고 따뜻한 눈빛과 입맞추고 싶어지는 아리따운 입은 활달하고 영리한 분위기를 자아내었다. 아무튼 그녀는 건강하고 명랑한 하일브론 아가씨처럼 보였다. (...) 그녀는 속세에 속한 존재였다. 그녀의 눈은 밤마다 버릇처럼 성경과 고소느의 "보물상자"를 읽는 사람의 눈은 아니었다. (p. 207)


한스와 엠마는 단둘이서 압축기 옆에 남게 되었다. 엠마는 어수룩한 한스를 상대로 장난을 치며 그를 유혹한다. 한스는 마법에 걸린 듯 사랑에 빠진다. 엠마는 그에게 첫사랑이자 마지막 사랑이었다.

모든 것이 이상하게도 다르게 변해 있었다. 아름다움을 자아내며 마음을 설레게 만들었다. (...) 하늘이 이처럼 높고, 아름답고, 그리움으로 푸르게 물들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강물이 이다지도 맑고, 청록색의 거울처럼 미소짓던 적이 없었다. 둑이 이리도 눈이 부시리만치 하이얀 거품을 내뿜은 적이 없었다. 모든 것이 장식을 두른 그림처럼 새로이 그려져 투명하고, 산뜻한 유리판 뒤에 세워진 듯이 보였다. 또한 모든 것이 한바탕 축제가 벌어지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한스의 가슴속에서도 이상하리만치 굳건한 감정과 처음 느껴보는 눈부신 희망의 파도가 세차게, 불안하게, 그리고 달콤하게 굽이쳣다. (...) 이 모순적인 감정은 희미하게 솟구치는 샘풀이 되어 있었다. 몹시도 강렬한 그 무엇이 한스의 가슴 깊숙이 묶여진 사슬을 끊고, 자유를 만끽하려는 듯했다. 그것은 아마도 흐느낌이너가 누래거나 부르짖음이거나, 아니면 떠들썩한 웃음이었을 것이다. (p. 213)


한스는 엠마가 보고 싶어 매일 밤 그녀의 집 앞을 서성였다. 그리고 그녀는 그런 그에게 매일 밤 키스를 해줬다. 그녀 덕분에 한스가 가지고 있던 마음의 병과 두퉁이 조금씩 치유되는 듯 했다.

그녀의 나지막한 목소리는 마치 머나먼 밤하늘의 저편에서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나한테 뽀뽀해 주겠니?"
그녀의 밝은 얼굴이 가까이 다가왔다. (...) 은은한 향내를 풍기는 흐트러진 머리카락이 한스의 이마를 스쳤다. 넖게 퍼진 하얀 눈꺼풀과 까만 속눈썹으로 덮인 그녀의 눈은 살며시 감긴 채 바로 한스의 눈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수줍은 듯이 내민 한스의 입술이 그 소녀의 입에 닿았을 때, 강렬한 전율이 그의 몸을 휘감고 지나갔다. (...) 한스는 그녀의 입술이 타오르는 것을 느겼다. 그리고 마치 한스의 생명을 삼켜버리기라도 하려는 듯이 그녀의 입이 자신의 입을 내리누르며 탐욕스럽게 빨아대는 느낌이 들었다. 낯선 입술이 자신의 입술에서 떨어지기도 전에 그처럼 전율에 휩싸인 환희는 견디기 힘든 피곤과 고통으로 변해 있었다. 엠마가 그의 입술을 자유롭게 놓아주었을 때, 한스는 비트적거리며 경련을 일으키는 듯한 손가락으로 울타리를 꼬옥 붙들었다. (p. 220 ~ 221)


어느날 갑자기 한스는 엠마가 고향을 떠나 집으로 돌아갔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녀는 한 마디 말도 없이 작별 인사도 없이 떠나버렸고, 한스는 그녀가 진실된 마음으로 대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버렸다. 그는 무엇인가를 잃어버린듯 불행에 빠지고 말았다는 막연한 느낌에 사로잡혔다. 그리고 매일 밤 그는 엠마에 대한 그리움으로 몸부림쳤다. 결국 그녀와의 사랑은 그에게 강렬한 상흔을 남겼다.

왜 그 추억이 이처럼 아름답고 강렬한지, 왜 그 추억이 자신을 이다지도 비참하고 이처럼 아름답고 강렬한지, 왜 그 추억이 자신을 이다지도 비참하고 슬프게 만드는지 알 수 없었다. (...) 단지 그는 이 추억이 어젯밤에 있었던 엠마에 대한 기억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옛날의 행복과 일치하지 않는 무엇인가가 자신의 내면에서 꿈틀거리고 있다는 것을 느낄 뿐이었다. 다시 깃대가 황금빛으로 반짝이는 모습이 보이고, 친구 아우구스트가 웃는 소리가 들리고, 갓 구운 과자의 냄새가 나는 것만 같았다. 이 모든 것이 너무나도 즐겁고 행복했지만, 이제는 그로부터 멀리 떨어져 전혀 낯선 과거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한스는 껍질이 거친 아름드리 잣나무에 기대어 절망에 싸인 채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이 눈물도 그에게는 순간의 위안과 구원을 줄 뿐이었다. (p.224 ~ 225)


시작하자마자 허무하게 끝나버린 그의 안타까운 사랑의 기억을 가진채로, 한스는 다시 시작하려고 한다. 그는 아버지 권유로 기계공이 되기 위해 기계공장에 취직한다. 공부, 우정, 사랑 모두를 잃어버린 그는 더욱 방황하고 죽음에 대한 생각은 점점 더 강해진다. 어느날 한스는 술에 취해 강물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된다. 한스의 죽음이 자살인지 사고였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같은 시각, 아머지가 마음속으로 그토록 꾸짖던 한스는 이미 싸늘한 시체가 되어 검푸른 강물을 따라 골짜기 아래로 조용히 내려가고 있었다. 구역질이나 부끄러움이나 괴로움도 모두 그에게서 떠나버렸다. 어둠 속에서 흘러 내려가는 한스의 메마른 몸뚱이 위로 푸른 빛을 띤 차가운 가을밤의 달빛이 비치고 있었다. (...) 그가 어떻게 물에 빠지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 평화와 깊은 안식이 가득한 밤, 그리고 창백한 달빛이 그를 향해 비추었기 때문에 피곤함과 두려움에 지친 나머지 어찔할 수 없이 죽음의 그림자에 휘말려 들었는지도 모른다. (p.260 ~ 261)


결국 그는 죽음을 선택함으로써 수레바퀴의 굴레를 벗어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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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레바퀴의 굴레를 벗어나려면 결국 죽음뿐인게 인생 아닐까 싶군요!! ㅎㅎ

결말이 씁쓸하네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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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1권 다 읽은 느낌입니다. ㅎㅎ
좋은 서평 감사합니다.

어렸을 때는 내용이 어려워서 잘 읽히지 않았던 헤르만 헤세의 소설이었는데, 성인이된 지금도 여전히 그의 소설은 어렵게 느껴집니다. ㅎㅎ
근몇년간 스릴러 소설만 읽었는게, 요즘은 고전 소설도 다시 읽어보고 있어요. 헤르만 헤세 소설은 반복해서 읽을수록 더 재미있네요. ㅎㅎ